거친 숨을 몰아쉬며 기침과 가래로 고생하는 사람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지긋한 나이의 남성에게 주로 나타나는 이같은 증상은 “기침, 가래 쯤이야” 하고 우습게 여기기 쉽지만,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일 수 있다.
아직은 낯설지만 이 질환은 우리나라 45세 이상 성인 17.2%, 65~75세의 35%가 앓을 정도로 국민적인 병이다.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가 지난해 국내 9개 대학병원의 1997~2006년 COPD 입원환자 현황을 조사한 결과, 2006년 입원 환자 수가 1,862명으로 1997년(1,251명)보다 49%나 늘었다. 특히 60세 이상 고령 COPD 환자가 전체 환자의 86%를 차지했다.
COPD는 세계적으로 암, 심혈관질환, 뇌혈관질환 다음으로 흔한 사망률 4위의 질환이 됐다.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 김영균(강남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정보이사는 “급격한 고령화와 함께 COPD 환자도 가파르게 늘어날 것”이라며 “이 질환을 방치하면 암보다 더한 고통에 시달릴 수 있다”고 말했다.
■ 흡연ㆍ대기오염이 주범
COPD는 담배나 대기오염, 그 외의 물질에 의해 기도가 점점 좁아져 호흡 기능이 천천히 저하되는 병이다. COPD 환자의 80~90%가 흡연 때문에 이 질환을 앓는다. 일반적으로 하루 1갑 이상 20년 동안 담배를 피운 사람에게 많이 나타난다. 흡연 시작 후 20년이 지나면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학계에 보고되고 있다. 또한 대기오염으로 이산화황, 이산화질소 등이 많이 생겨 COPD 발병률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무나 석탄, 스토브, 히터 등의 사용으로 인한 실내공기오염도 폐 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이에 따라 직업상 오염물질이 많은 곳에 종사하는 광부나 건설ㆍ금속 노동자의 발병률이 높다. 폐에 압력을 많이 가하는 성악가, 연주자, 유리공 등에서도 많이 발병한다.
폐 기능이 50% 이상 손상되기 전까지도 기침 등의 흔한 증상으로 인해 느끼지 못하지만, 이상이 발견되면 이미 심각한 상태라 할 수 있다. 폐 기능은 한 번 손상되면 다시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COPD는 기침과 가래, 호흡곤란이 장기간 나타나며 피부점막, 입술과 손끝이 검은색으로 바뀌는 청색증이 발견되기도 한다. 심하면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15㎝ 앞 촛불을 끄기도 힘들 정도로 호흡량이 부족해지며, 운동은 물론 기본적인 생활도 어려워진다. 이같은 상태가 계속되면 탈진, 혼수상태를 반복하다 결국 목숨을 잃는다.
■ 조기 검진 통한 예방이 최선책
무엇보다 예방과 조기 검진이 중요하다. 특별한 증상이 없는 일반인도 주기적인 폐 기능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 특히 매일 한 갑 이상의 담배를 피우거나 과거 담배를 피웠던 사람은 반드시 검사를 받아야 한다.
다행히 COPD는 복잡한 혈액검사나 내시경 검사를 해야 발견할 수 있는 질병이 아니다. 간단한 폐 기능 검사만으로도 쉽게 조기진단할 수 있다. 대부분 5~10분이면 검진받을 수 있고, 비용도 1만3,000원 정도에 불과하다.
스파이로미터(폐활량계)라는 장비로 검사한다. 비강으로 숨이 새지 않도록 코를 집게로 막고, 장비에 달려 있는 호흡계의 파이프를 입에 물고 숨을 힘껏 내뿜거나 마시면서 폐 기능을 측정한다. 자동적으로 계측치와 함께 컴퓨터에 의해 분석돼 즉시 결과를 알 수 있다.
검진을 통해 초기 COPD로 판명됐다면 약으로 치료할 수 있다. 치료제는 먹는 약(잔틴 계열)과 흡입제가 있다. 최근에는 적은 양으로 호흡기에 바로 작용하는 흡입제가 선호된다. 대표적인 약으로는 최초의 COPD 전문치료제로 하루 한번 흡입하는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의 ‘스피리바’(성분명 티오트로피움)가 있으며, GSK의 ‘세레타이드’(크시나포산 살메테롤), 한국아스트라제네카의 ‘심비코트’(포르모테롤) 등도 쓰인다.
COPD 환자는 금연해야 하며 가벼운 걷기로 호흡에 필요한 근육을 강화하는 것이 좋다. 과일, 현미, 호두 등 항산화제가 풍부한 음식도 폐 손상 방지에 도움이 된다.
도움말=영동세브란스병원 호흡기내과 안철민 교수, 강남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김영균 교수
권대익 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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