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관계가 진전되면 당연히 남북관계도 좋은 영향을 받는다."
정부 고위관계자가 1일 북측이 미국 식량은 받으면서 남한의 옥수수지원은 받지 않겠다고 하는 등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고수하는 데 대해 기자들의 질문이 나오자 이렇게 답했다. 이 당국자는 특히 "북미관계가 발전하면 할수록 미국이 우리를 도와주고 남북관계를 개선시키려 노력하지 한국을 제치고 (뭘) 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북미관계 개선이 경색된 남북관계의 개선으로 연결된다는 얘기인데,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 한반도 정세를 돌아보면 이내 안이하고 위험한 인식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북한의 통미봉남 전략은 꼭 15년 전에 있었다. 북한의 핵 개발로 시작된 1차 북핵 위기 당시 우리 정부는 북핵은 물론 남북관계까지 북미 협의에 맡길 수 밖에 없었다. "핵을 가진 자와 손을 잡을 수 없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북 강경론으로 남북관계가 단절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미간 핵 동결을 다룬 1994년 제네바 합의문에 생뚱맞게도 '북한은 남북대화에 착수한다'는 문구가 들어간 것이다.
물론 이는 우리 정부가 미국을 통해 북한을 압박한 결과였다. 하지만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우리가 뒷짐을 진 채 북미협의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은 국가적 굴욕이자, 실패한 외교의 전형이었다. 더욱이 우리는 말 한마디 못하고 경수로 건설비용의 70%를 떠안았다.
미국은 향후 북미접촉에서 한국 입장을 고려하고 반영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미국의 힘을 빌어 해야 한다면, 우리의 국가적 자존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제네바 합의 때처럼 국익 손상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정진황 정치부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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