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 미사가 고비에 이른 듯하던 촛불시위의 흐름을 다시 바꿔 놓았다. 지난 주말 시위대와 경찰이 격렬하게 부딪친 시위 양상을 비폭력ㆍ평화적 모습으로 되돌린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동시에 ‘시위 피로증’과 공권력의 강경대응 앞에 주춤하던 촛불시위에 도덕적 세례를 베풀어 타협 없는 대치를 마냥 지속하게 만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사제단은 그제 서울 광장의 시국 미사와 거리행진을 “위험에 빠진 나라를 구하려는 뜻”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곧 이어 “1976년 3ㆍ1 구국선언과 비슷하다”고 덧붙인 것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쇠고기 수입 갈등이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유신독재 시절의 엄혹한 상황에 빗댈 수는 없다. 사제단의 명망을 드높인 옛 추억을 일깨우려는 뜻인지 모르나, 민주주의 현실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규정을 토대로 민주주의에 이바지할 수는 없다.
사제단의 의도는 “비폭력 원칙이 깨지면 촛불도 꺼진다”는 발언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촛불이 사위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매일 저녁 시국 미사와 함께 단식 기도를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그런 비폭력 투쟁도 실제 국가적 난국 수습에 기여할 수 있을 때만 정당성을 인정 받을 수 있다. 장관고시 철회와 전면 재협상, 경찰청장 해임 등의 요구를 되풀이해서는 스스로 목표로 내세웠듯 국민의 상처가 이내 아물기를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언제 다시 과격시위와 강경진압의 악순환이 재현될지 모를 일이다.
이 난국을 헤쳐 나가려면 김수환 추기경이 지적했듯이 대화로 문제를 푸는 길밖에 없다. 경찰이 시국 미사를 종교행사로 간주해 허용하고, 거리행진도 막지 않은 것은 그런 맥락에서 바람직하다. 사제단도 서둘러 시위대의 귀가를 종용하는 절제된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세속의 법질서를 존중해야만 하느님의 정의도 실현할 수 있다.
사제단이 진정 나라와 국민을 걱정한다면 대화와 타협을 앞장 서 이끌어 주기 바란다. 그것이 신앙심 부족한 이들의 의구심을 씻고 현실정치 지도자들을 참회하게 만드는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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