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아름다운 인간을 닮은 기계와의 섹스가 사람간 성교를 대체해버린 세계, 모든 생명체의 희로애락을 마치 내 일처럼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간들의 사회, 어떤 자원도 무진장 생산할 수 있는 기술 개발로 인해 자원의 희소성이란 개념 자체가 사라진 세계….
2006년 계간 <문학수첩> 에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한 소설가 남한(43ㆍ사진)씨의 첫 소설집 <유다와 세 번째 인류> (문학수첩 발행)에는 이같은 거대한 사고실험이 수행되고 있다. 유다와> 문학수첩>
인간의 심성 혹은 외부 조건이 급변할 경우 인간사회는 어떤 상황을 맞게 될 것인가에 대한 탐구다. 철학과 출신의 작가는 이 가상 실험을 위해 현재성의 체취가 느껴지지 않는 인공적 미래를 소설 배경으로 설정한다.
언뜻 보기엔 과학소설(SF)과 흡사한 풍경이지만, 인간 본성에 대한 집요한 탐구가 이 책에 고전적 풍취를 부여한다. 갖은 철학ㆍ신학ㆍ문학 텍스트로 무장하고 형이상학적 주제에 정면으로 달겨드는 남씨의 작풍은 관념소설의 지분이 적은 한국소설 현 구도에서 낯선 기대감을 선사한다.
수록작 ‘갈라테아의 나라’는 성적 파트너로서 인간의 자리를 대체한 섹스 인형 ‘갈라테아’를 소재로 미(美)의 문제를 다룬다. 주인공은 여러 종류의 갈라테아를 번갈아 소유하며 성욕을 충족하면서도 혈육에 대한 열망으로 인간 여자와 관계를 갖고 아들을 출산한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으로 그의 기대를 키웠던 아들은, 그러나 “더 이상 승화시킬 에로스도 없고 채우지 못할 욕망조차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
‘유다와 세 번째 인류’에서는 인간이 이기심 대신 타자에 대해 극대화된 공감 능력을 발휘할 때의 결과를 타진한다. 유엔 고위관리 ‘유다’는 오지 컬트 집단의 실상을 파악하려 아마존 밀림을 찾았다가 이들이 미물과도 완벽한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신인류임을 알게 된다. 이들에게 ‘자기’는 없다. 공감을 나눴던 뭇생명의 의식ㆍ관점의 총체로 끊임없이 변해갈 따름이다.
‘리스펙트의 역사’ 속 미래엔 부족함 없이 공급되는 재화 대신 리스펙트(respectㆍ존경)가 사회계층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다른 사람의 관심과 찬탄에 목마른 이들은 ‘클론’이란 모조인간을 구입해서 그들의 맹목적 존경을 얻어내지만, 여기엔 클론에 대한 열광을 자신의 리스펙트로 삼으려는 약삭빠른 상혼이 자리하고 있다. 사회주의가 꿈꿨던 재화의 평등은 리스펙트라는 대체 가치의 탄생으로 어그러진다.
자본주의 이후 역사의 진보를 꿈꾸는 견해에 대한 비관을 표명하는 이런 결론은 다른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성욕과 예술적 영감의 원천인 미의식이 공유될 때 인간은 자기 파멸을 감행하고(‘갈라테아의 나라’), 사회주의적 인간의 전제라 할 수 있는 공감이 편재될 때 인간은 제 몸을 다른 생명체의 먹이로 내준 채 무기력하게 멸종돼 간다(‘유다의 세 번째 인류’).
남씨는 “90년대 사회주의 패망을 보면서 다른 운동권 386세대와 마찬가지로 충격을 느꼈다”면서 “사회주의 아닌 새로운 평등주의는 어떤 모습일까, 인간 본성에 평등주의를 배반하는 요소는 무엇일까에 대한 오랜 고민이 담긴 작품집”이라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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