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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우리가 잊고 있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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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우리가 잊고 있는 것들

입력
2008.07.01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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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를 외치는 수십만의 인파가 서울 도심에서 촛불을 들고 <아침이슬> 을 불렀던 지난달 10일 저녁, 이명박 대통령이 캄캄한 청와대 뒷산에서 그 불빛을 보고 노래를 들으며 뼈저린 반성을 했다는 그 시간에 K선배는 인근 호텔에 있었다고 했다.

환경재단이 ‘환경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레스터 브라운을 초청해 가진 강연회 자리다. 브라운은 “한 번 쓰고 버리는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서구식 경제모델은 에너지 위기에 더해 식량위기까지 초래할 것”이라면서 “중국 등의 성장패턴을 볼 때 현재와 같은 ‘플랜 A’ 에너지 소비체제를 방치하면 20년 후엔 괴담 수준의 재앙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한 사람이다.

■ 촛불ㆍ고유가 메시지는 '지속 가능'

K선배는 태양열이나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체제인 ‘플랜 B’로의 신속한 전환을 촉구하는 브라운의 견해를 지지하면서도, 지구적 차원의 공동대응 체제를 기대하거나 원자력을 배제하는 그의 생각은 너무 이상적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날 바깥 거리의 함성 이상으로 브라운이 말미에 호소한 내용은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우리는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그들을 잘 교육시키고 먹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기후변화의 재앙이 일어나면 그들의 미래는 없습니다. 건강하고 잘 배워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 얘기는 지금 우리 사회를 혼돈과 갈등 속으로 몰아넣는 두 담론, 즉 ‘시위’와 ‘기름값’을 더욱 성찰적으로 따져보고 합리적 출구를 찾을 것을 요구한다. 별로 상관없을 것 같은 사안이지만, 일상의 대화나 주장에서 둘은 의외로 쉽게 만난다.

우선 배럴 당 150달러대 진입을 눈앞에 둔 기름값이 우리 경제를 내동댕이치는 현실에서, 외환위기 때처럼 국력을 모아 대처하기는커녕 서민생계마저 위협하는 도심시위가 두 달째 계속되는 게 웬말이냐는 한탄이 이어진다. 다른 쪽엔 정부가 재벌 편향적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조기 발효시키기 위해 국민의 건강주권과 국가의 검역주권까지 팔아먹어 놓고 대책도 없는 천정부지 기름값을 이유로 국면을 호도한다는 비판이 있다.

좀 더 깊은 관계를 찾을 수도 있다. 브라운의 추론을 따라가면 석유 과소비 경제가 초래한 고유가는 기후변화재앙의 다른 표현이고 결국 다음 세대의 우울한 운명을 암시하는 묵시록으로 다가온다. 또 작금의 시위양상과 주체는 뒤죽박죽이지만, 쇠고기 촛불시위가 진한 생명력을 가졌던 바탕엔 ‘미친 소 먹고 일찍 죽기 싫다’는 여중생들의 고함과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어머니들의 분노가 있었다. 요컨대 불안감이 시위 과격화와 기름값 고공행진에 불을 지폈고, 거기엔 ‘지속 가능한 미래’라는 문제의식이 알게 모르게 공통분모로 자리잡고 있다는 얘기다.

한가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다. 법질서를 앞세운 공권력과 저항권을 주장하는 시위대가 도심에서 육탄 충돌하고 마침내 석유배급제까지 포함한 4단계 고유가 비상대책을 내놓아야 하는 위기국면이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진정한 위기는 시위나 고유가 자체보다 그것에 내포된 뜻을 비틀고 자의적으로 절제와 통제의 선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 결과 보수든 진보든 지속 가능한 사회에 대한 고민은 찾을 길 없고, 자신의 이해와 성향에 따라 위기를 확대ㆍ축소ㆍ왜곡하는 세력의 투쟁 아니면 방종만 넘쳐난다.

다시 한가한 소리로 돌아가면 지금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잊고 또 잃고 있다. 지역 세대 계층 가릴 것 없이 경제를 살려야 한다던 의욕은 오간 데 없고 정치는 인터넷 댓글 수준으로 전락했다. 정부는 권위 상실과 함께 정통성까지 도전 받고, 국민들은 선택에는 반드시 비용이 따른다는 기본 개념을 놓쳐버렸다. 5년 후, 10년 후 먹고 사는 문제는 남의 일이다.

■ 다음 세대에 빚더미 물려 줄 건가

그러니 시위와 고유가 격랑이 지나면 안팎에서 어떤 청구서가 날아올지 모른다. 작게는 시위와 파업의 잔해를 수습할 돈과 값비싼 기름을 남용한 대가에서부터, 크게는 에너지ㆍ식량ㆍ기후변화 등 지구적 의제를 소홀히 한 비용까지 다양할 것이다. 그런데도 오만한 보수와 무모한 진보는 서로 손가락질하며 책임을 미룰 뿐이다. 물심양면의 ‘빚쟁이 한국’은 시간문제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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