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촛불’이 고도의 전략 게임에 돌입했다. “불법 집회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임채진 검찰총장의 30일 발언처럼 정부가 촛불집회 및 거리시위 원천 차단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자 촛불집회를 주최해온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측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 종교계와 연계, ‘비폭력 평화집회’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정부로서는 예상치 못했던 난감한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검경은 그동안 촛불집회 및 가두시위 주도 세력을 면밀히 살피며 강경 대응의 타이밍을 조절해온 것으로 보인다. 불법 집회 주도자들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에 이은 시위 강경 진압 시도, 최루액 사용 방침 발표, 29일의 집회 원천봉쇄 돌입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이 그렇다. 여기에 30일 새벽 촛불집회를 주도하고 있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와 진보연대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한 것은 무엇보다 지도부의 와해를 통한 시위대 외곽 무너뜨리기 수순으로 해석됐다.
정부의 강경 드라이브는 ‘이대로 밀렸다가는 이명박 정권 내내 진보 세력에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경찰의 한 고위 간부는 “촛불집회 초반에는 일반 시민들이 주축을 이뤘고, 그 때문에 국민 대다수의 정서가 촛불집회를 지지 한다고 판단했다”며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진보세력이 주도하게 되고, 이슈도 미국산 쇠고기 문제 외에 교육문제, 대운하 등 현 정권 정책 전반으로 넓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인사들 사이에서는 시위대에 계속 밀렸다간 5년 내내 진보세력에 발목을 잡힐 지 모른다는 우려가 퍼졌다”며 “이는 이제는 어떡하든지 막아야 한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부의 강경 대응은 예기치 않은 상황에 맞닥뜨렸다. 30일부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대책회의와 함께 연계, 비폭력 집회로의 선회를 견인하기 시작한 것이다. 종교계가 가세해 평화적 집회와 가두행진을 이끄는 상황에서 경찰이 이를 강력 제지할 명분은 약해질 수 밖에 없다. 경찰 관계자는 “종교계의 개입은 예상치 못했다”며 곤혹스러워 했다.
시위대 규모가 1만명을 넘을 경우 원천봉쇄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도 강경 대응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요소다. 이 경우 경찰의 사전봉쇄는 오히려 격렬한 충돌만 야기할 수 있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집회 참가 인원이 2,000명 이하로 예상되면 원천 봉쇄하고, 그 이상이면 일단 서울광장으로 유도한 다음 거리로 나오는 것을 철저히 막을 계획”이라며 상황에 따른 ‘분리 대응’방침을 밝혔지만 구상대로 될 지는 미지수다.
정부의 강경 대응에도 불구, 촛불집회는 한 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우선 집회 주최 측이 물러설 뜻이 없다. “쇠고기 재협상”을 외쳐온 대책회의는 폭력시위에 대한 따가운 비난을 의식, “종교계 인사들과 함께 인간방패를 쳐서라도 비폭력 집회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엔 한 동안 폭력시위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일반시민들을 재규합할 수 있는 방법은 비폭력 시위 밖에 없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촛불집회 및 거리시위에 대한 강경 진압으로 이명박 정부가 집권 초반부터 정당성의 위기에 빠질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강경 진압, 원천 봉쇄 이후 종교인들까지 나서 구국기도회를 여는 것은 시위대에 비폭력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정부에는 재협상을 하고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강경 진압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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