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경기 용인시 마북리에 자리잡은 KCC 중앙연구소 구조실험동. 흰 가운과 작업복을 입은 연구원들이 수백개의 전선을 통해 중앙통제소로 전송되는 데이터를 시시각각 체크하며 가열로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이마에선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섭씨 300도가 넘는 가열로에 벽체 구조물을 넣고 2시간 넘게 가열하는 내구 시험을 하는 중이다. 이윽고 ‘웅~’ 하는 소리가 나자 연구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가열로 벽체를 향한다. 다행히 구조물 형체가 그대로 유지된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하나 둘 바깥으로 빠져 나온다.
이 곳은 단열재 전문기업인 KCC그룹의 핵심 기술연구소. 요즘 생활 속에서 빠져나가는 에너지를 잡기 위한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다. 한 연구원은 “벽면과 창문을 통해 낭비되는 에너지를 최소화해 본격적인 고유가 시대에 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집에서 새는 에너지를 막아라
이를 위해 KCC 중앙연구소가 집중하는 연구 분야는 주택 단열재다. 국내 전체 에너지 사용량 중 건축 분야 소비량은 약 25%. 산업 부문에 쓰이는 에너지는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지만, 건축물에 사용되는 에너지는 개인들에 무방비로 맡겨놓고 있어 에너지 낭비의 주범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유럽과 일본, 미국 등 선진국들은 집에서 새는 에너지를 잡기 위해 국가적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독일은 연간 사용 연료량이 ㎡당 3ℓ에 불과한 ‘3ℓ 하우스’를 개발해 대중화를 눈앞에 두고 있고, 일본 등 다른 선진국도 기존 주택보다 에너지 사용량을 90%나 줄인 ‘패시브(passive) 하우스’를 개발 중이다.
■ 에너지 절약형 주택의 비밀은 창문에 있다
고효율에너지 건축물을 만들기 위한 핵심 기술은 단열재 개발에 있다. 그 중 창문을 통해 새 나가는 에너지를 얼마나 줄이느냐가 관건이다. 단열재로 만든 일반 주택(아파트 포함)에서 에너지 손실이 가장 큰 곳이 창문(36%)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KCC는 일반 유리 표면에 은막을 입힌 ‘로이 복층유리’를 개발, 시장 보급에 힘쓰고 있다. 로이 복층유리는 일반 가정에서 쓰는 복층유리에 비해 열관류율(W/㎡Kㆍ창문으로 빠져나가는 열에너지 수치)이 50% 가량 낮아 에너지가 22% 절감된다고 한다. 연구소에 따르면 105.6㎡(32평)형 아파트 창문을 로이 복층유리로 교체했을 경우, 일반 복층유리에 비해 가구당 연간 21만9,000원의 냉ㆍ난방 비용을 줄일 수 있다.
KCC는 창문 유리에 박막형 태양전지를 부착, 에너지를 절약을 뛰어넘어 에너지 생산이 가능한 ‘건물일체형 태양전지 시스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계획이 현실화되면 가까운 미래에 에너지 낭비가 ‘제로(0)’에 가까운 초고효율 건축물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 에너지 효율화 인식 전환 시급
고유가 시대를 대비한 단열재 기술은 이미 선진국 수준에 근접하고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전문가들은 주택에너지 절감을 위해서는 정부가 우선 단열 성능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정부가 정한 창문의 열관류율(수치가 낮을수록 효율이 좋음) 기준은 3.84로, 핀란드(1.4)나 덴마크(1.8) 등 선진국에 비해 2배나 높아 주택에너지 효율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건설업체와 일반인들의 인식 전환도 필수적이다. 예컨대 로이 복층유리로 창문을 만들더라도 창틀을 알루미늄 재질로 하면 PVC(폴리염화비닐) 재질보다 에너지 효율이 떨어져 효과를 낼 수 없다. 그런데도 건설사와 일반인들은 건축비용 증가를 이유로 PVC 재질을 외면하는 게 현실이다.
변종오 중앙연구소 상무는 “고유가 시대를 맞아 정부 차원의 대규모 에너지 절감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정작 집에서 새나가는 에너지는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며 “건축물 관련 기준만 강화하더라도 연간 수천 억원의 에너지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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