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을 전매 특허로 삼아 온 촛불집회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이 담긴 정부 고시가 강행된 25일 이후 폭력으로 물들고 있다.
상당수 집회 참가자들은 “어떤 명분으로도 폭력은 정당화할 수 없다”며 ‘비폭력’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강성 폭력 시위자들의 목소리에 눌리고 있다. 특히 폭력 시위가 가열되면서 경찰도 강경 대응으로 맞불을 놓고 있어 양측의 충돌은 더욱 격화하고 있다.
■ 확산되는 폭력시위
촛불집회에서 폭력이 세를 불려가는 분위기는 벌써 사흘째 이어졌다. 이 달 초부터 쇠파이프를 휘두르거나 경찰 버스에 밧줄을 묶어 당기는 등 폭력 행위가 간헐적으로 나타나기는 했지만, 소수에 그친 게 사실이다.
하지만 25일 이후에는 100명 이상이 매일 과격ㆍ폭력 시위에 나서고 있다. 전체 집회 참가인원이 줄고 있어 과격 시위자의 비중이 커진 것도 원인이다.
26일 서울 세종로와 신문로 일대에서는 오후 9시부터 청와대 진출을 시도하는 시민들과 이를 제지하는 경찰 사이에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 10여 명은 방패를 들고 행렬을 막는 전경들을 한 명씩 끌어내 주먹과 발 등으로 때렸다.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제지했지만, 서울 영등포서 소속 김모 일경이 코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25, 26일 이틀 동안 전ㆍ의경 68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고, 무전기와 방패 등 장비 300여 점을 빼앗겼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또 시위대 20여 명은 모래주머니로 만든 계단으로 경찰 버스 위에 올라가 깃대와 발로 차량을 크게 훼손시켰으며 이들 중 일부는 칼과 나사못 등으로 바퀴에 구멍을 내기도 했다.
경찰이 이 같은 폭력 시위에 정면 대응하기 시작하면서 시위대 쪽에서도 부상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25일 서울 세종로 사거리에서 조모(53)씨가 전경과 몸싸움을 벌이다 왼손 중지를 물어 뜯겨 손가락 윗부분이 잘려 나갔고, 26일에는 신문로 새문안교회 인근 골목길에서 30대 남성이 전경이 던진 돌에 맞아 머리가 6㎝ 가량 찢어지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 “끝까지 비폭력으로 가야” 목소리
폭력 시위가 확산되자 시위 참가자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촛불집회는 끝까지 비폭력을 지향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자영업자 박모(44)씨는 “경찰이 강경하게 대응한다고 해서 시민들까지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촛불집회의 정신이 아니다”며 “비폭력으로 맞서야 경찰에게 맞아도 할 말이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경찰의 적극적 대응이 촛불집회의 폭력화를 유발했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경찰이 전경버스를 부수는 등 폭력을 행사한 참가자를 연행하기 시작한 25일 저녁부터 시위대의 폭력 양상이 두드러졌다.
25, 26일 이틀 동안 연행된 시민은 모두 141명으로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한달 여 동안 연행자 수(757명)의 20% 수준에 달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는 이날 긴급호소문을 내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와 관련해 “촛불집회가 평화적 분위기에서 열릴 수 있도록 경찰과 시민이 서로 협조해 달라”고 당부했다.
인권위는 “이미 촛불집회가 집회 문화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데 기여했다고 평가한 바 있지만 최근 경찰과 시위대의 잇따른 충돌은 그 동안 촛불집회가 쌓아올린 성과를 송두리째 위협하고 있다”며 “공공질서도 소중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인권위는 또 “경찰은 필요 이상의 진압으로 시민들의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허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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