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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 희망이 곁에 있습니다] <8> 청각 도우미견 훈련사인 청각장애인 이호진·박옥경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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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 희망이 곁에 있습니다] <8> 청각 도우미견 훈련사인 청각장애인 이호진·박옥경씨

입력
2008.06.27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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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따르릉~.”

요란한 자명종 소리에 어디 선가 강아지 한 마리가 번개처럼 솟구쳐 침대 위로 튀어 오른다. 앙증맞은 몸짓으로 꼬리를 흔들며 침대에 누워 잠든 사람을 깨우더니, 이내 울려대는 초인종 소리에 대문과 침대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짖어댄다. 누군가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잘…했…어.”

26일 오후 경기 용인에 있는 ‘삼성전자 청각 도우미견 센터’에 마련된 17평 규모 원룸 형태의 실내 훈련장. 청각 도우미견 훈련사 박옥경(28ㆍ청각장애 2급)씨와 이호진(25ㆍ청각장애 2급)씨가 소형견인 코카스파니엘종(種) 보미(4)와 함께 한창 소리 적응훈련을 하고 있다. 비록 어눌한 말투지만, 훈련에 열심인 보미에게 칭찬이 이어진다.

그 누구보다 청각장애인들의 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청각 도우미견을 다루는 그들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청각장애인들이 겪는 고통을 저희 만큼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그래서인지 훈련할 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자신들의 신체 장애가 오히려 능숙한 청각 도우미견 훈련사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되고 있는 셈이다.

두 사람 모두 어렸을 때 청각을 잃었다. 박씨는 세 살 때 주사를 잘못 맞는 바람에 부작용으로, 이씨 역시 세 살 때 약물 부작용으로 청각장애인이 됐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너무 어린 나이에 청력이 손실된 관계로, 그에 따른 불편이 피부에 크게 와 닿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대다수 청각장애인들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육체적 결함보다도 ‘세상에 버려졌다’는 마음의 상처가 큰 탓에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는 게 일반적이다.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보세요. 세상엔 오히려 감사할 일들이 훨씬 많아요. 현실을 거부하고 저항하면 그 만큼 고통은 더 커질 수 밖에 없거든요. 청각장애인들 중에 우울증 환자가 많이 생기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심각한 마음의 병이야말로 많은 청각장애인들을 괴롭히는 ‘복병’이라는 것이다.

“청각 도우미견과 청각장애인은 닮은 부분이 많아요. 도우미견 대부분이 주인에게서 버림받아 거리를 떠돌던 유기견이거든요. 청각 도우미견이나 청각장애인 모두 ‘소외됐다’는 공통 분모가 있는 거죠. 바로 그런 인식 탓에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있어요.”

결국 이들에게 가장 시급한 건 ‘마음의 치유’인 셈이다. 때문에 청각 도우미견이 단지 장애인들의 ‘잃어버린 귀’ 역할을 뛰어 넘어, 닫힌 마음까지도 보듬어 안는 심리치료사가 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지금은 어엿한 청각 도우미견 훈련사로 자리 잡았지만, 오늘이 있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련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두 사람의 가족은 전국 각지의 유명하다는 농아학교를 찾아 수도 없이 이삿짐을 쌌다. 어떤 식으로든 교육을 시켜 일반 학교에 편입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를 일반 학교에서 보내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박씨는 간신히 들어갔던 일반 중학교는 졸업했지만 일반 고등학교 진학은 포기해야 했고, 이씨는 아예 일반 학교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말을 잘 못하니까, 친구 관계가 힘들어지고 잘 어울리지 못했어요. 행동 반경이 갈수록 좁아지니, 간호사가 되겠다는 꿈도 절로 접게 되더군요.” 박씨는 학창시절의 기억을 이렇게 되새겼다. 하늘을 나는 파일럿을 꿈꿨던 이씨도 냉혹한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소리를 선물하는 행복 도우미가 되겠다는 작은 소망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다. 박씨는 각고의 노력 끝에 나사렛대 인간재활학과를, 이씨는 한국재활복지대 컴퓨터게임 개발학과를 무사히 마쳤다.

부푼 가슴을 안고 세상에 나왔지만, 취업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여전히 뿌리깊었다. 그때 두 사람에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곳이 바로 삼성전자 청각 도우미견 센터다. 이들은 동료 장애인들과 경쟁 끝에 도우미견 센터 입사에 성공했다.

“처음엔 훈련 과정이 익숙치 않은데다 일반 직원들과 의사 소통이 잘 안돼 갈등이 많았어요. 하지만 서로 참고 배려하는 노력을 꾸준히 기울인 끝에 지금은 관계가 좋아졌어요.”

청각 도우미 훈련 업무를 본격 진행하면서 아쉬운 부분도 많다. “아직도 도우미견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반인이 많아요. 공공장소에서 눈치를 주거나 홀대하는 사람도 흔하고요. 장애인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는데, 왜 따듯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 걸까요?” 이 부분에서 박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물론 보람도 있다. 버려졌던 강아지가 자신들의 손에 의해 새로운 희망을 불어 넣는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는 사실은 생각만해도 뿌듯하다.

“도우미견을 바깥 세상으로 내보낼 때마다 늘 아쉬운 생각이 들어요. 뭔가 부족한 자식을 시집 보내는 기분이에요.(웃음)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보냅니다. 도우미견들이 밖으로 나가 절망에 처한 장애인의 삶을 바꿔줄 테니까요. ‘또 하나의 가족’이 생긴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잖아요.” 두 사람의 입가엔 어느새 잔잔한 미소가 번져 나갔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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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각 도우미견의 탄생은…

청각 도우미견은 전국의 동물보호소에 있는 유기견들 가운데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다. 경쟁률이 약 1,000대 1에 달한다. 청각 도우미견 선발은 보통 월 1~2회 이뤄지며 소리에 대한 반응과 건강 상태, 사람에 대한 친화력, 기본 품행 등의 평가 항목으로 나눠 진행된다.

소형견부터 대형견까지 모두 가능하지만, 우리나라 주택구조를 고려할 때 요크셔테리어나 말티즈, 코카스파니엘, 푸들 등 실내생활에 적합한 소형견이 주로 선정된다.

이렇게 뽑힌 청각 도우미견은 ‘소리’와 ‘복종’, ‘사회화 훈련’, ‘사용자 교육’, ‘사후관리’ 등의 단계로 나눠 3~6개월 동안 본격적인 훈련을 받는다.

첫 번째 단계인 ‘소리’ 훈련은 실제 가정과 유사한 환경에서 알람 시계와 초인종, 아기 울음, 화상전화 등 청각 장애인에게 필요한 다양한 소리에 대한 적응력을 키워준다.

이어 ‘복종’ 단계는 장애인 보조견의 필수 덕목인 바른 품행을 길러주기 위해 ‘앉아’, ‘엎드려’, ‘기다려’ 등을 포함한 기본 자세를 가르친다.

‘사회화 훈련’ 과정은 버스나 지하철 등의 교통수단과 외부 공공장소 출입에 대한 적응력을 위한 것이다.

네 번째 단계인 ‘사용자 교육’ 과정에선 훈련 과정을 마친 청각 도우미견과 사용자인 청각장애인이 직접 만나 2주간 상호 적응하는 시간을 가진다. 1주일은 청각 도우미견 센터에서, 다음 1주일은 사용자 거주지에서 이뤄진다.

마지막 ‘사후관리’에서는 사용자의 청각 도우미견 유지 관리에 도움을 주기 위해 청각 도우미견 센터 직원들의 정기적인 현장 방문 지도가 이뤄진다. 처음 6개월 동안 총 4회 방문하지만, 이후엔 6개월마다 1회씩 청각 도우미견 사용자 거주지를 찾아간다.

2002년 발족한 삼성전자 청각 도우미견 센터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도우미견 양성 기관으로, 해외 유수의 기관과 훈련사 연수 등 활발한 교류를 진행하고 있다. 그 동안 총 44마리의 도우미견을 청각장애인들에게 기증했다.

허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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