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찰떡 궁합을 과시해 온 한국과 미국이 요즘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조지 W 부시대통령의 7월 방한 연기 과정만 해도 그렇다. 치밀해야 할 정상외교 일정 협의 및 발표 과정이 이례적일 만큼 ‘비외교적’으로 처리된 것이다.
미국 백악관은 24일 밤(한국시간) 부시 대통령의 방한 연기를 언론에 일방적으로 공개했다. 한국 측에 통보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날 오후까지만 해도 청와대나 외교통상부 모두 7월 방한이 다소 유동적이긴 하지만 유효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비공개 브리핑에서 “최종 결정이 나지 않았으며 이번 주 내 매듭지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도 여전히 7월 방한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
특히 여권 관계자는 “미측이 부시 대통령의 7월 방한에 대한 판단을 한국 측에 일임했다”며 “금명간 최종 결정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의 7월 방한 결정이 임박했다는 뉘앙스였다.
그런데 백악관 데이너 페리노 대변인이 24일 밤 늦게 브리핑에서 “부시 대통령이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별도로 이명박 대통령과 만날 것이며 한국 방문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 관계자는 “한미 협의에서 방한 성과를 극대화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연기를 하게 된 것”이라며 “양국이 동시 발표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백악관 브리핑의 질문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도 발표 형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백악관에 경위를 물어봤으며 의도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에 공개됐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한미 관계 저변에 냉기류가 흐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사실 부시 대통령은 1월 이 대통령 당선자의 특사로 방미한 정몽준 최고위원과의 면담에서 G8 정상회의에 즈음해 방한을 희망했고, 4월 이 대통령의 방미 당시 이를 사실상 확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어색해진 한미 관계의 배경에는 쇠고기 파동이 깔려 있다. 백악관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에 대해 두 차례나 양보했음에도 쇠고기 수입이 여전히 불투명한 데 대해 우회적인 불만을 표시한 것이란 관측도 있다. 백악관의 일방적 연기발표가 단순히 우발적 상황에 따른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워싱턴포스트는 23일 “백악관은 요즘 이 대통령에게 감동하지 않고 있다”면서 “양국 관계가 흔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 출범 직후 한미 관계 복원 및 동맹 강화를 대외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의 대미외교가 점점 꼬여가는 분위기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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