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않아 태양이 이글이글 타오르겠지요. 그리고 공황이 북적댈 테고요. 지금 국내외 경기가 IMF 직전의 상황인데도 외국으로 나가려고 하는 분들이 있다면, 관광만 하지 말고 ‘엽전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기회로 삼으라고 권하고 싶네요. 그 길만이 다가오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10위권의 나라로 진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내 것이 없는 사람은 남의 것을 흉내낼 수밖에 없고, 그런 나라는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종속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일이니까요. 새 정부가 ‘영어 올인’을 내세운 것이나 거리에 꺼지지 않는 촛불도 직ㆍ간접적으로 이 콤플렉스와 연관을 맺고 있으니까요.
짧은 여행기간에 어떻게 그런 일을 해내란 말이냐고요? 서양으로 나가려는 분들께는 먼저 뒷골목을 눈여겨 보라고 권하고 싶네요. 우리는 흔히 서양 사람들이 우리보다 잘 사는 줄 압니다. 하지만 2004년도 독일의 경우, 로펌 회사의 초임 변호사 봉급이 3,200 유로, 당시 환율로 환산하면 450만원 안팎, 50% 세금을 떼고, 집세, 자동차 할부금, 기름값, 공중변소 이용료가 700원이라면 어떻게 사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찬란한 문화가 있잖으냐구요? 그렇지요. 박물관이나 성당에 가면 기가 죽을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귀 기울여 보세요. 어디선가 가느다란 울부짖음 소리가 들려올 거예요. 박물관 전시물들은 원주민들을 학살하면서 뺏어온 약탈품들이고, 성당 지하실의 석관(石棺)들은 종교세를 안 낸 농노들을 화형해 가며 만든 것들이라서 슬픈 소리가 나는 겁니다.
그래도 길거리에 늘어선 몇 백 년 된 저택들은 부럽더라고요? 그래요. 베란다에로 올린 장미꽃들이 나폴대는 집들은 정말 멋있더라고요. 그러나, 들어가 보세요. 천장은 휑뎅그렁하게 높고, 마루 바닥은 삐걱거리고, 수도는 찔찔대고, 하수구는 막히기가 일쑤더군요.
그렇다고 약점만 보고 오라는 게 아닙니다. 그것도 또 하나의 콤플렉스니까요. 대신 왜 저들은 산꼭대기에 돌로 집을 짓고, 우리는 산아래 흙과 나무로 지었는가. 왜 저들은 빵과 치즈를 칼이나 창의 변형으로 먹고, 우리는 밥과 된장국을 작대기와 삽의 변형으로 먹는가. 왜 저들은 분석적 논리를 중시하고, 우리는 통합적 논리를 중시하는가, 곰곰이 따져보며 다니라는 겁니다.
우리와 서양의 기층문화(基層文化)는 전혀 다릅니다. 그러니까, 유럽 사람들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던 유목민들의 후예이고, 우리는 한 곳에 머물며 살던 농경민의 후예입니다. 그리고, 저들은 끊임없이 전란에 휩쓸려 살아왔고, 우리는 비교적 평화롭게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이와 같이 서로 역사와 문화를 깨달아야만 받아들여야 할 것을 받아들이고,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기에 말씀 드리는 겁니다.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로 여행하려면 어떡하느냐고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면 더 환하게 웃으면서 우리말로 인사하세요.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문을 잡고 기다리고, 식당에 가서는 겸손한 자세로 팁을 주세요. 약한 자에게는 더욱 부드러워지는 게 엽전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길이니까요.
문화에는 종차(種差)는 있어도 우열의 차이는 없습니다. 그걸 염두에 둘 때만이 의미 있는 여행을 하실 수 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尹石山 시인ㆍ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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