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가 두번째 골을 넣는데 맥이 확 빠지더라구요. 친구들과 함께 한 잔 하지 않을 수가 없었죠."
대학생 이선호(25)씨는 18일 전공수업에 출석하지 못했다. 이날 새벽에 치러진 유로2008 이탈리아-프랑스 전을 보느라 밤을 꼬박 새웠기 때문이다. 새벽 3시 45분에 시작된 중계는 날이 밝은 뒤 끝났다. 이씨는 아침햇살을 받으며 뒤풀이를 하고, 해가 중천에 뜬 뒤 잠들었다. 전형적인 '유로2008 폐인'의 모습이다.
요즘 20, 30대 남성들은 봄도 여름도 아닌 유로 2008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대륙과 바다 건너에서 펼쳐지는 축구대회에 한국의 젊은층이 푹 빠졌다. 대부분의 경기가 새벽 이른 시간에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중계하는 케이블 스포츠 채널의 시청률은 1%를 넘나든다.
이 채널들에게 1% 시청률은 프라임타임 대에도 넘기 힘들었던 마의 벽이다. 새벽이면 잠잠해지던 인터넷 포털사이트도 밤잠을 설친다. 네이트 관계자는 "유로2008이 시작된 후 스포츠 관련 콘텐츠 트래픽이 평소보다 30% 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월드컵 때나 볼 수 있던 풍경도 재연되고 있다. 대학가와 도심의 술집에서는 대형 TV로 유로2008을 중계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늦은 밤 맥주를 마시며 세계 최고의 축구를 즐기고, 낮에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블로그에 어젯밤 경기에 대한 리뷰를 올린다.
직장과 학교에서는 붉게 충혈된 눈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열띤 토론을 벌인다. 쌈짓돈, 혹은 저녁 술값을 걸고 내기를 하는 풍경도 목격된다.
한국의 젊은 세대가 유로2008에 열광하는 모습은 얼마 전 열렸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통해 충분히 예견됐던 것이다. 당시 박지성이 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출전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맨유의 유니폼을 입고 극장을 빌려 단체 관람을 시도하는 팬들도 있었다.
거리에서는 앙리나 반 니스텔루이같은 유명 축구선수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유럽 리그의 스타들이 총출동한 펩시콜라 CF는 온라인 공간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유럽 축구에 대한 관심은 당초 박지성 등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 축구 스타들이 불러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이젠 한국인 선수들에 대한 관심을 넘어, 유럽 축구 전체에 대한 열광으로 확대됐다. 단순히 경기를 관람하는 차원을 벗어나 선수와 명문 클럽에 대한 정보를 줄줄 꿴 전문가 수준의 팬들이 넘쳐난다.
케이블 채널은 프리미어리그와 세리에A 등 유럽 리그를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고, 스스로 선망하는 스타가 돼 그라운드를 누빌 수 있는 온라인 게임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명품' 축구를 즐기려는 마니아적 욕망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미디어 환경, 스포츠 관련 기업들의 자본력이 합쳐지며 유럽 축구가 한국의 거대한 팬덤 문화의 아이템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아디다스 관계자는 "유럽 축구리그는 전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엇비슷한 전력을 가진 팀들이 끊임없이 시합을 갖는다.
그런 시합을 이제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데다 월드컵으로 촉발된 축구에 대한 관심까지 더해지니 인기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말했다. "이미 유럽 축구는 한국 남성들의 생활 문화 중 하나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강명석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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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2008 우승상금이 120억… 알고보면 더 재밌다
밤마다 잠 안자고 시퍼런 잔디구장을 들여다 본다고, 누구나 유로2008의 광팬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력은 가상하다지만(?) 최소한의 배경지식은 머릿속에 넣고 몰입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이제 열흘 정도밖에 남지 않은 빅게임 레이스를 뒤처지지 않고 즐길 수 있다. 밤샘 TV시청을 “미친 짓”이라고 몰아치는 아내, 혹은 여자친구의 구박을 설득할 수 있다. 유로2008 관전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팁들을 짚어봤다.
■ 월드컵의 전초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는 축구 강국의 ‘엑기스’만 모인다. 월드컵처럼 그냥저냥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 턱걸이한 나라들까지 전지구적으로 참전하지 않는다.
영국의 프리미어리그, 독일의 분데스리가 등 여러 클럽에서 맹위를 떨친 최강의 스타들이 각 나라 대표 선수로 모여들기 때문에 예선부터 월드컵 경기보다 훨씬 밀도있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유로2008’ 식으로 ‘유로+열리는 해’로 표기되는 유럽축구선수권대회는 1960년 프랑스에서 첫 대회가 개최됐다. 매 월드컵 2년 후 일종의 다음 월드컵 전초전으로 진행되는 이벤트 다.
2008년의 경우 50개국이 7개조로 나뉘어 예선을 펼쳤고 그 중 16개국이 본선에 나섰다. 그냥 보더라도 32강이 본선에 나서는 월드컵보다 경쟁률이 세다. 그만큼 재미가 있다는 뜻이다.
■ 3,000억원에 달하는 상금
경쟁률만 세면 뭐하나, 출전하는 선수들 중 스타가 적다면 눈만 버린다. 하지만 유럽축구선수권대회는 상금이 스타들의 귀한 몸값에 맞춰 가히 천문학적이다. 올해 유럽축구연맹(UEFA)이 내건 상금은 무려 1억8,400만 유로, 한화 약 2,933억원이다.
16개 본선 참가팀은 참가비 명목으로 일단 120억원씩을 챙긴다. 조별 리그에서 이기면 16억원을 받고, 8강에 오르면 32억원, 4강에 진출하면 48억원이 또 지급된다.
우승상금은 120억원. 전승을 거두면? 상금으로만 368억원을 챙기게 된다. 티에리 앙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페르난도 토레스 등이 거침없는 태클을 뚫고 달릴 만도 하다.
■ 105만장의 입장권 동나
공식적으로 유로2008의 전 경기 입장권(105만장)은 개막도 하기 전에 이미 완전 매진됐다. 마틴 칼렌 조직위원장은 이미 지난 2일 “아쉽지만 입장권은 단 1장도 남지 않았다”고 밝혔다. 결승전 입장권 값은 최고 86만원 정도. 일반석은 17만원 가량에 팔렸다.
유로2008에 출전한 선수들의 소속 리그는 독일의 분데스리가가 가장 두드러진다. 무려 56명의 선수가 등록했다. 팀으로는 프랑스의 올림피크 리옹과 그리스의 파나티나이코스가 10명씩으로 가장 많다.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호날두를 포함해 5명이 경기를 뛰고 있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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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단관… 맨유당사 모여라" 팬클럽들 '용광로 열정'
시차로 인한 새벽 경기 중계 탓에 ‘폐인’생활을 거듭하면서도 팀에 대한 충성심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한국의 유럽축구 마니아들. 4만6,000명의 회원을 가진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국내 팬클럽 ‘맨체스터유나이티드당사’(맨유당사ㆍwww.redsmanuyd.com)와 2,000여명의 회원이 있는 ‘뉴캐슬당사’(툰코리아ㆍwww.nufc.co.kr) 운영자들에게서 유럽축구 팬클럽의 탄생과 활동 내용을 들어봤다.
■ 단관, 실축, 정모, 공구
팬클럽 회원들은 처음엔 특정 선수를 좋아했다가 그가 소속한 팀과 축구 자체의 매력에 흠뻑 빠지는 마니아 형태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맨유당사 운영자 김지훈(22·국민대 2년)씨는 “2000년께 온라인 축구게임 오프닝 동영상에서 맨유의 전설적인 선수 라이언 긱스의 환상적인 드리블 장면을 보고 반해버렸다”며 “홍콩 스타 스포츠채널에서 중계하는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경기 장면을 보고 수많은 관중과 광활한 경기장 등 웅장한 열기에 유럽축구의 맛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유럽축구 팬클럽은 외국에서 홈 경기가 열리기 때문에 한국의 붉은악마처럼 단체응원을 벌이기는 어렵다. 휴가나 방학 때 개인적으로 해외 원정 응원을 가는 경우도 있지만 팬클럽 차원에서 홈 구장을 밟는 것은 쉽지 않다. 때문에 최근엔 이같은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한 오프라인 응원 무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형 스크린이 있는 호프집에 모여 경기를 보며 각 팀을 응원하는 유럽식 펍(Pub) 문화, 이른바 ‘단관’(단체관람)의 유행이 그것. 맨유당사는 지난 5월 챔피언스리그의 결승전 때 서울 신촌에서 단관을 가졌다.
툰코리아는 리그 중에 주로 서울 이태원에서 단관을 연다. 유로2008과 같이 리그별 팀 대결이 아니라 국가간 대항전이 펼쳐질 때는 좋아하는 선수의 나라를 응원하는 풍경도 벌어진다.
친목을 위한 ‘실축’(실제 축구), ‘정모’(정기 모임)도 꾸준히 이뤄진다. 맨유당사는 지난해 6월 휴가철 래프팅 모임을 가졌고, 툰코리아는 올해 여름 MT와 축구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국내 유럽축구 팬클럽 간의 실축 경기도 펼친다. 맨유와 이탈리아 명문 유벤투스와 인터밀란의 팬클럽 축구 대회가 7월 열릴 예정이다. 스포츠용품 매장에서 유니폼이나 기념품을 함께 주문하는 ‘공구’(공동 구매)도 팬클럽의 주요 활동 중 하나다.
■ 잠 못 드는 밤은 숙명
8월에 시작해 이듬해 5월 초까지 열리는 유럽 리그는 8시간 안팎의 시차 때문에 국내에는 대개 밤늦게 중계된다. 특히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는 새벽 4시를 훌쩍 넘겨 경기가 시작되는 경우도 적지않아 이들 팬클럽은 올빼미 생활을 해야 할 때가 많다.
리그 중 대부분의 경기가 토, 일요일에 벌어지기 때문에 조금 무리하면 챙겨볼 수 있긴 하지만, 수면 부족은 이들에게 숙명과도 같다. 하지만 “몸은 피곤해도 이기기만 한다면”이다.
툰코리아 운영자 이정민(22ㆍ서강대 3년)씨는 “일상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건 피곤함이 아닌 경기 결과”라며 “팀이 대패라도 하면 다른 팬클럽의 놀림과 짜증 속에서 일주일을 견뎌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 생중계를 보는 것도 쉽지 않다. 국내 중계가 빅클럽이나 한국 선수가 진출한 중하위권 팀 위주로 짜여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른 클럽의 팬들은 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전전하며 뚝뚝 끊기는 화질의 중계를 봐야 할 때도 많다.
오해와 갈등도 있다. “K리그에도 좋은 팀이 많은데 잘 나가는 외국 클럽만 좋아한다”는 국내 축구 팬들의 비난을 받기도 하고, 박지성 등 국내 스타 플레이어의 해외 진출로 선수와 팀 응원 사이에 갈등을 겪기도 한다. 맨유당사에서 얼마 전 박지성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출전을 놓고 갈등을 빚은 것도 그 때문이다.
■ 축구 마니아에서 코스모폴리탄으로
유럽축구의 국내 팬클럽은 본국의 팬클럽 회원들과 성격도 닮아간다. 영국 뉴캐슬의 팬클럽은 영국 내에서도 팀에 대한 충성도가 가장 높은 팬으로 유명하다. 이정민씨는 “이 팀 성적이 좋지 않은 편이라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그런 팀을 좋아하냐’고 놀림을 받아서인지 내부적으로 더욱 뭉치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뉴캐슬 팬클럽은 이태원에서‘단관’을 할 때마다 고향팀을 응원하기 위해 들른 재한 영국인들과 함께 영어 응원가를 부르고, 골을 넣으면 맥주병을 들고 영국식 춤 동작으로 세리머니를 하면서 국적을 떠나 그들과 하나가 된다. 김지훈씨는“외국 구단을 응원하면서 그 나라의 언어나 풍습, 문화 등에 대한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유럽축구 팬클럽이 역시 가장 흥분될 때는 숙명의 라이벌과 역사적 결전(더비)이 있을 때다. 영국의 머지사이드 더비(리버풀 대 에버튼), 북동부 더비(뉴캐슬 대 선더랜드), 맨체스터 더비(맨유 대 맨체스터시티) 북런던 더비(아스널 대 토트넘) 글래스고 더비(셀틱 대 레인저스), 이탈리아의 밀라노 더비(AC밀란 대 인터밀란), 로마 더비(AS로마 대 라치오), 스페인의 엘클라시코 더비(레알마드리드 대 바르셀로나) 등이 대표적이다.
어쨌든 이들은 ‘축구 사랑’이란 점에서 하나가 된다. 이정민씨는 “요즘은 유럽팀 팬클럽 회원이나 K리그 팀서포터들의 정신적 만족감에 차이점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리그별 국내 주요 팬클럽
#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날당사 하이버리 www.highbury.co.kr
뉴캐슬당사 툰코리아 www.nufc.co.kr
맨체스터유나이티드당사 www.redsmanutd.com
리버풀당사 premiermania.net
리즈유나이티드당사 리즈코리아 www.lufckorea.com
# 이탈리아 세리에A
세리아매니아 www.seriamania.com
SS라치오당사 라치오코리아 www.laziokorea.net
인터밀란당사 띠아모인테르 www.tiamointer.com
AC밀란당사 AC밀라니스타 acmilanista.net
유벤투스당사 유베꼬리아 www.juvecorea.com
AS로마당사 라로마코리아 www.laromacorea.com
# 독일 분데스리가
분데스매니아 www.bundesmania.com
바이에른뮌헨당사 www.bayern.zc.bz
베르더브레멘당사 www.ichliebebremen.com
# 스페인 프리메가리가
발렌시아당사 www.valenciacf.co.kr
레알마드리드당사 www.realmania.net
바르셀로나당사 www.culecorea.com
이현정기자 agada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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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축구 佛 들로네가 1960년 창설
유럽축구연맹(UEFA) 주관으로 4년마다 열리는 국가 대항전인 유럽축구선수권대회의 산파 역을 한 이는 프랑스의 앙리 들로네다.
들로네는 1927년 유럽 국가 대항전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1954년 출범한 UEFA의 초대 사무총장으로 1960년 프랑스에서 첫 대회가 열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UEFA는 들로네의 공적을 기려 유럽축구선수권의 우승 트로피를 ‘앙리 들로네 컵’으로 명명했다.
유럽축구선수권의 시작은 미약했다. 프랑스에서 열린 첫 대회 본선은 17개국이 참가한 예선을 통과한 4개국의 토너먼트로 진행됐다. 첫 우승컵은 유고슬라비아를 2-1로 꺾은 소련이 가져갔다.
회를 거듭하면서 참가국 수가 늘어나고 권위가 높아진 유럽선수권은 1996년 잉글랜드 대회를 기점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현재와 같은 ‘유로+개최년도’라는 식의 대회 명칭도 이때부터 시작됐고, 예선을 통과한 16개국이 4개 조로 나뉘어 조별 리그를 치른 후 각 조 2개 팀이 8강 토너먼트로 우승팀을 가리는 본선 대회 방식도 이때부터 자리를 잡았다.
유럽축구선수권이 국내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시작한 것도 잉글랜드 대회부터다. 1994년 미국월드컵 이후 PC통신을 통해 유럽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유로96이 최초로 공중파 텔레비전을 통해 국내에 생중계되면서 국내에 유럽축구 마니아층이 형성되는데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유럽선수권 최다 우승국은 3차례(1972, 1980, 1996) ‘들로네 컵’을 들어올린 독일(서독 포함)이다. 한 대회 최다골과 통산 최다골 기록은 현재 UEFA 회장인 미셸 플라티니가 1984년 프랑스 대회에서 수립했다.
김정민 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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