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추가 협상 없이 귀국행을 선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 16일 오전. 국내에서는 “협상 결렬 아니냐”는 암울한 전망이 우세했다. 추가 협상의 핵심인 ‘30개월령 미국산 쇠고기 수입 차단’에 대해 여전히 양국 정부가 평행선을 달린 것 아니냐는 관측이었다.
하지만, 당시 실제 상황은 국내 관측과 달랐다. 김 본부장이 귀국행을 선택하기 앞서 가졌던 두 차례(13, 14일) 협상에서 대원칙에는 합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과의 첫날 회의, 둘째 날 회의에서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실효적으로 차단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사실 진전이 많이 있었다”는 것이 김 본부장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김 본부장이 귀국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벼랑 끝 전술’을 편 배경은 무엇일까. 우리 대표단은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입을 차단하는 것만으로는 촛불 민심을 잠재우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α’를 얻어내는 것을 추가 협상의 마지노선으로 정해놓고 있었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미국측이 우리 대표단의 귀국행을 만류하고 추가 협상을 제안하면서, 30개월 미만 쇠고기에 대해 4개 부위(뇌, 눈, 척수, 머리뼈)를 추가로 수입 차단하는 등의 ‘+α’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김 본부장은 이와 관련, “협상 과정에서 귀국을 결심한 적이 한번 더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서로 얼굴을 붉히고 심지어 험한 말까지 오고 간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 대표단은 또 협상 테이블에 ‘촛불시위 사진’을 올려놓고 미국측을 압박했다는 후문이다. 김 본부장은 “촛불시위가 가장 대규모로 열렸던 6월10일의 시위 장면을 찍은 천연색 큰 사진을 한 장 워싱턴에 가져 갔다”며 “그 사진을 협상 테이블 가운데 올려놓고 협상이 어렵게 진행될 때, 여러 가지 과학적 이야기가 나올 때 미국측에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 사진을 봐라. 이 사진이 과학적으로 설명이 될 사진이냐”고 강조를 했다는 것이다.
특히, 김 본부장이 지난 13일 추가 협상을 위해 워싱턴으로 출발하기 앞서 사전 정지 작업이 치밀하게 진행됐다고 청와대측은 전했다.
김 본부장 출국 1주일 전 ‘양국 정상간 합의 → 대화 성격 규정(재협상에 준하는 추가 협상) →외교안보수석 라인의 물밑 협상 →청와대ㆍ백악관 라인 백업 → 추가 협상 최종 고비에서 대통령 담화’ 등 5단계 시나리오를 준비했다는 것이다. 이런 전략 아래 김병국 전 외교안보수석은 “쇠고기는 검역이나 위생 문제가 아니라 한ㆍ미 동맹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백악관을 설득했고, 이런 물밑 작업 후에야 김 본부장이 미국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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