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 캄캄한 청와대 뒷산에 올라 끝없이 이어진 촛불시위대가 부르는 아침이슬을 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결국 국민들의 분노에 항복을 해 국민들에게 진솔한 사과를 하는 한편 국정쇄신을 다짐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이명박식 ‘6ㆍ29선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발표에 대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등 일각에서는 ‘속이구 선언’에 불과하며 변한 것이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덥지 않은 반성과 혁신 약속
개인적으로 이 같은 반응은 지나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대통령의 변화의지를 일단 받아들이고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러 정황을 보면 그같은 부정적 반응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여러 면에서 이 대통령의 반성과 혁신약속은 반쪽짜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국민 사과가 있기 이틀 전 이 대통령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장관회의 개회식 환영사에서 인터넷을 통한 거짓과 부정확한 정보의 확산은 합리적 이성과 신뢰까지 위협하고 있다며 “인터넷의 힘은 신뢰가 담보되지 않으면 약이 아닌 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대한민국은 인터넷 선도국가로서 “인터넷의 힘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때 인류에게 얼마나 유익하며, 부정적으로 작용할 경우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가를 경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 대통령이 민심수습을 위해 마지못해 대국민사과를 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아직도 최근의 촛불시위가 일부 불온세력이 인터넷을 통해 광우병에 대한 거짓정보를 유포해 생겨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물론 이 발언이 문제가 되자 청와대는 이 대통령의 발언이 촛불시위와 관련이 없는 일반적인 지적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해명과 달리 대통령의 ‘인터넷 독’ 발언이 있자 말자 공안기관 등이 인터넷 통제에 팔을 걷고 나선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경찰청은 이 대통령 발언이 있자 “온라인 여론 동향을 파악하고 왜곡된 정보에 대한 신속한 대응을 하겠다”는 취지에서 인터넷 정보분석 전담팀 신설에 나섰다고 한다. 대검찰청은 한술 더 떠 직접 기자회견까지 열어 ‘사이버 폭력 등 인터넷 유해사범 특별단속’을 다짐하고 나섰다.
구체적으로, 인터넷을 매개로 기업체에 광고중단 요구 등 집단적인 협박과 폭력으로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행위, 악의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모욕성 댓글을 달아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 개인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해 집단적인 비방, 협박을 유도하는 행위 등을 집중 단속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젊은 가정주부 등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조중동이 촛불시위를 부정적으로 왜곡보도하고 있다면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 조중동에 광고를 내는 기업들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으로 공유해 광고를 중단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공권력의 무모한 인터넷 통제
선진국에서 노동착취가 심한 기업의 물건에 대해 불매운동을 하는 등 소비자의 힘을 이용해 사회를 고쳐나가려는 ‘의식 있는 소비자운동’ 내지 ‘프로슈머’(생산자인 프로듀서와 소비자인 컨슈머의 합성어로, 생산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깨인 소비자라는 뜻)운동이 한국의 보수언론에 적용된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운동에 대해 검찰이 칼을 뽑고 나선 것이다. 아직도 민심을 공권력으로 잠재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6월 10일 청와대 뒷산에서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뼈저린 반성을 했다는 이 대통령과 신뢰가 담보되지 않은 인터넷은 독이라며 인터넷 통제에 나서는 이 대통령 중 어느 모습이 진정한 이 대통령의 모습이며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확실한 것은 신뢰가 담보되지 않은 정부는 신뢰가 담보되지 않은 인터넷 이상으로 무서운 독이라는 사실이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