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개혁이 용두사미로 끝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촛불집회’에 혼쭐이 난 한나라당이 공기업 개혁에 제동을 걸기 시작한 데다, 민주노총이 공공부문 사유화 저지를 명분으로 7월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엊그제 특별기자회견에서 “공기업 선진화는 필요하므로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맥이 빠진 느낌이다. 공기업 선진화는 당초 대통령의 기자회견문에는 빠졌다가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의 강력한 주장으로 겨우 포함됐다는 후문이다. 각종 터무니없는 괴담(怪談)이 나돌고 있는 전기 가스 물 건강보험은 아예 민영화 대상에서 제외됐다.
당정이 촛불시위에 기가 꺾여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산업은행 우리금융지주 등 일부 금융기관과 현대건설 대우조선 등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기업만 민영화하는 선에서 공기업 개혁이 그칠 가능성이 높다.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만 겨우 끄적거릴 것 같은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청와대 수석진 개편에서 공기업 개혁에 강한 의지를 보여온 곽승준 국정기획수석이 퇴진하고, 그 자리에 여당 출신의 박재완 정무수석이 온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박수석이 민심과 노조 반발에 민감한 정치권과의 의견 조율을 중시할 경우 공기업 개혁은 후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MB노믹스 핵심과제 표류 위기
하지만 공기업 개혁은 결코 표류하거나 침몰돼서는 안 된다. 사업을 중단키로 한 한반도 대운하는 정치적인 프로젝트 성격이 강한 데다, 대다수 국민들의 반대로 추진 동력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공공부문 개혁은 신이 내린 직장으로 비판 받는 공기업의 비대화와 방만 경영을 해소하려는 것으로 작은 정부와 큰 시장을 지향하는 MB노믹스의 핵심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 100일에 맞춰 이달 초 발표하려다 촛불집회에 밀려 보류한 300여개 공공기관 개혁 방안은 차질없이 추진돼야 한다. 이 방안에 따르면 산업은행 등 40여 곳은 민영화하고, 기능이 중복되는 주택공사와 토지공사 등 50여 곳은 통폐합 수순을 밟기로 했다. 나머지는 위탁경영, 경영효율화, 청산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으로 돼 있다. 민영화 대상이 전체의 7분의 1에 불과하고, 에너지 공기업 등은 민영화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눈높이에는 미흡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40여 곳의 공기업과 10여 개의 워크아웃 기업을 매각하면 63조원의 재정수입이 들어오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돈은 총체적 경제위기를 맞아 쓸 데가 많은 재정의 버퍼 역할을 하면서 민생대책과 경기진작에 긴요하게 쓰일 수 있다. 공기업 개혁이 정책의 후순위로 밀려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 미만으로 추락한 정권의 지지도를 올리기 위해서도 국민들이 공감하는 공공개혁을 늦출 수는 없다. 공기업들은 매년 23조원의 국민의 혈세를 지원 받아서 고액연봉과 정년보장 등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 공기업 직원들의 지난해 1인당 평균 연봉은 5,300만원으로 근로자 평균 임금보다 60% 가량 높다. 국내 최고 회사인 삼성전자보다 임금이 높은 공기업이 90개가 넘는다. 그러나 수익성은 상장사에 비해 낮은 데다, 공기업의 30%가 만성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문을 닫아야 할 상당수 공기업들이 국민 세금과 시장독점으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성과 거둬
공기업 구조조정은 완급과 경중을 가려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300여개 공기업을 일시에 개혁의 소용돌이로 밀어넣을 경우 노조 등의 저항에 밀려 표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1단계로 금융기관과 워크아웃 기업 등 별다른 문제가 없는 공기업들은 7월 이후 민영화를 서둘러야 한다. 2단계로는 노조와의 갈등이 불가피한 공공기관 통폐합을 추진하고, 마지막으로 공공요금과 경제 전체에 파급 영향을 주는 공기업의 경영효율화 등을 단행하면 된다.
공기업 구조조정은 지역별 혁신도시 개선 방안과 연관지어 풀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민영화와 통폐합으로 지역별 혁신도시 사업이 차질을 빚으면 지방자치단체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게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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