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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 희망이 곁에 있습니다] <7> 베트남 응에안의 얼굴 기형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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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 희망이 곁에 있습니다] <7> 베트남 응에안의 얼굴 기형 어린이들

입력
2008.06.20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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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씨 38도. 가만히 서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절로 흐른다. 무더위를 뚫고 찾아간 곳은 베트남 응에안주의 빈(vinh)시. 베트남의 6월은 우기여서 하루 한 두 차례 소나기가 내리지만, 한 낮의 폭염을 누르기에는 역부족이다. 오히려 덥고 습한 날씨만 만들 뿐이다.

호치민시에서 비행기로 1시간50분 거리인 빈은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의 고향이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베트남 사람들에겐 성지와도 같다. 하지만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외국인들이 거의 찾지 않는 농촌 마을이다.

빈 공항을 빠져 나오니 새로 포장된 도로 양 옆으로 벼 포기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황금빛 논들 사이에 학교 모양의 얕은 3층 높이의 벽돌 건물이 눈에 띈다. ‘빈 아동병원’이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조차 제대로 돌지 않는 이 곳에서 8명의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2시간이 넘도록 이방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1년 전 이맘 때 SK텔레콤의 도움으로 여기서 안면기형 수술을 받은 아이들이다.

응옥화(7), 응옥찌(11), 쩐티타오(4), 레티낌 응언(4ㆍ여), 호 청 뚜언(9), 쩐반쥬(9), 풍타오(5ㆍ여), 하이비엔(9). 8명의 어린이들은 윗입술과 입천장이 갈라지는 얼굴기형인 구순구개열(口脣口蓋裂ㆍ일명 ‘언청이’)을 갖고 태어났다. 이들에게 구순구개열은 단순히 얼굴기형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절박한 생존의 문제였다.

윗입술과 입천장이 갈라져 있다 보니 아기 때 젖을 빨아도 모두 입 밖으로 흘러 넘쳤다. 밥도 마찬가지. 먹으면 음식이 갈라진 입천장을 통해 코로 나오기 일쑤였다. 이렇듯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라 발육이 나쁜 탓인지 또래에 비해 서너 살은 어려 보였다.

당연히 발음이 안 좋아 말도 제대로 못했다. 응옥찌는 “말을 못해서 친구를 사귀기 힘들었어요. 아이들이 놀려서 울기도 많이 했고요”라고 말했다. 하이비엔은 체격이 왜소한데다 말도 제대로 못해 보통 6세에 입학하는 초등학교를 남들보다 1년 늦게 들어갔다.

그렇지만 농사를 짓는 부모들은 돈이 없어 수술을 해주지 못했다. 응옥화의 아버지는 “돈도 없고 어느 병원에서 고쳐야 하는 지도 몰랐어요. 고통스러워 하는 아들을 보면서 너무 속상하고 가슴 아팠지만, 도움의 손길을 주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어요”라고 안타까웠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현지 아동병원은 구순구개열을 치료할 시설도 부족하고 의료 수준도 높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지난해 가뭄 속의 단비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SK텔레콤의 지원을 받은 한국의 자원봉사단이 빈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삽시간에 소문이 퍼졌고, 얼굴기형 자녀를 둔 부모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백롱민 분당서울대병원 부원장을 단장으로 한 세민얼굴기형돕기회 소속 20명의 의사와 간호사들은 지난해 5월 26일부터 6월 3일까지 빈에 머물며 200명의 얼굴기형 어린이들을 무료 수술해 줬다. 이들은 에어컨이 가동 안돼 찜통이나 다름 없는 수술실에서 하루 12시간씩 매일 20명 이상의 어린이들을 수술했다.

쩐티타오의 아버지는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고맙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어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쩐반쥬의 어머니도 “가난 때문에 아들 기형을 못 고쳐줘 가슴이 아팠는데 이렇게 도와줘 너무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그로부터 1년. 8명의 아이들은 달라졌다. 학교를 다니며 친구도 사귀었고 건강하게 밥도 먹는다.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니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밝고 해맑은 모습이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수술자리를 쉽게 발견할 수 없을 만큼 깔끔하다. “맛있는 빵을 음미하면서 씹어먹을 수 있어 너무 좋아요.” 바게트 빵을 좋아한다는 응옥화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부모들의 삶도 많이 달라졌다. 물론 가장 기쁜 것은 아이들이 더 이상 장애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이들의 얼굴기형은 은연중 사회와 격리시키는 멍에였다. 당연히 사회가 원망스럽고 자녀들을 소외시키는 이웃들이 밉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레티낌 응언의 어머니는 “아이가 수술을 받은 뒤부터 성격도 밝아지고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있어요. 무엇보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며 웃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좋아요”라며 아이를 따라 활짝 웃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밝은 모습을 되찾고 나니 그 동안 베트남 정부가 보여줬던 무관심이 야속하기만 하다. 호 청 뚜언 아버지의 안타까운 호소가 이어진다.

“정부나 학교에서 장애아들을 도와줘야 하는데 아무 지원도 없는 게 현실이에요. 장애아들의 학비라도 줄여줬으면 좋겠어요. 초등학교 학비는 학교마다 다른데 매달 평균 30만동 정도로 비싼 편이거든요.” 베트남 서민들이 즐겨 먹는 쌀국수 한 그릇이 약 1만동 정도이니 결코 적은 澍育?아니다.

이런 처지의 그들에게 먼 이국 땅에서 날아와 도움의 손길을 내민 SK텔레콤과 세민얼굴기형돕기회는 천사와도 같았다. 덕분에 한국에 대한 이미지도 좋아졌다. TV드라마를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살가운 존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자녀들이 무료 시술을 받은 이후 한국은 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준 제2의 고국이 됐다. 한국인들은 무더위 속에서도 2시간 이상 참고 기다리며 만나보고 싶은 고마운 존재가 된 것이다.

취재를 마치고 병원 계단을 내려가는데, 응옥화 아버지가 다가와 기자의 손을 두 손으로 꼬옥 잡으며 멋쩍게 웃었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마음 속 깊이 고마워하고 있다는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얼굴 가득 피어난 순박한 웃음과 절로 맞잡은 손을 통해 소통과 나눔의 기쁨이 전해졌다. 그 웃음 하나만으로도 머나먼 오지를 찾은 보람이 있었다.

빈(베트남)=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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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T 베트남 얼굴기형 어린이 돕기

SK텔레콤이 베트남의 얼굴기형 어린이들을 위한 무료 수술에 나선 것은 벌써 10년이 넘었다. 1996년부터 세민얼굴기형돕기회(회장 백롱민)와 협력해 매년 구순구개열로 고통을 겪는 베트남의 얼굴기형 어린이들에게 무료 수술을 해주고 있다.

SK텔레콤은 수술에 필요한 제반 경비를 지원하는 한편, 수술 후에는 베트남 현지 병원에 수술 및 마취 장비, 의약품 등을 기증한다. 수술에는 베트남 108국군병원 의료진도 함께 참여한다. 그만큼 우리의 선진 의료기술을 이전해 주는 효과도 있다.

지난해 베트남 응에안 지역에 이어 올해에는 5월 23일부터 6월 1일까지 총 25명의 의료진과 SK텔레콤 자원봉사자들이 까마우 지역에서 200명의 얼굴기형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무료 시술을 했다.

‘베트남 어린이에게 웃음을’ 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올해까지 13년 동안 진행된 무료 수술을 통해 총 2,695명의 베트남 어린이들이 잃어버렸던 웃음을 되찾았다. 지원 규모는 연간 약 1억5,000만원씩, 총 19억3,000만원에 이른다.

SK텔레콤이 베트남과 인연을 맺은 것은 현지에서 벌이는 이동통신사업 ‘S폰’의 영향도 있지만, 열악한 의료시설과 경제 사정 탓에 장애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어린이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혜승 SK텔레콤 사회공헌팀 매니저는 “구순구개열이 특별히 치료가 어려운 기형도 아니고 베트남에만 유독 많은 것도 아니다”라며 “한국 등 전 세계에서 구순구개열을 갖고 태어나는 경우가 많지만, 경제 사정이 나은 지역 사람들은 신생아 때 일찍 치료를 하기 때문에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흉터가 아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베트남은 가난한 사람들이 많고 의료시설도 낙후돼 있어 장애를 갖고 자라는 경우가 많다. 경제 상황만 받쳐준다면 쉽게 고칠 수 있는 기형인데도 돈이 없어 천형처럼 얼굴 기형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SK텔레콤과 세민얼굴기형돕기회는 베트남의 이런 현실에 주목, 이동통신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자원봉사에 나섰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 받아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은 19일 베트남 정부로부터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국가우호훈장’을 받았다.

베트남 하노이시 국방부 호텔에서 열린 훈장수여식에서 응웬 티 조안 국가부주석에게서 훈장을 받은 김신배 사장은 “그 동안 베트남 오지를 돌며 어린이들에게 웃음을 찾아준 세민얼굴기형돕기회 백롱민 박사를 비롯한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에게 영광을 돌린다”며 “앞으로도 국내ㆍ외에서 소외된 이웃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 사회공헌 활동을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SK텔레콤은 세민얼굴기형돕기회와 함께 베트남 얼굴기형 어린이 무료 수술을 계속 지원하는 한편, 베트남 호치민시에 ‘정보기술(IT) 교육센터’를 세워 현지 IT 인재도 양성할 계획이다.

최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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