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등촌동에서 플라스틱 용기를 제조하는 S화학. 직원 50여명이 연간 70억원 규모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이 업체는 대기업들 등쌀에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플라스틱 원료(폴리에틸렌 하이덴)값이 작년초 톤당 110만원에서 현재 175만원으로 59%나 올랐지만, Y기업에 납품하는 1ℓ짜리 용기는 같은 기간 개당 132원에서 148원으로 12% 인상하는 데 그쳤다. S화학 정모 부장은 “대기업에 납품단가를 올려달라고 하면 다른 하청업체 가격을 보여주면서 ‘싫으면 납품하지 말라’는 식으로 으름장을 놓는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2. 지난 5월 S전자 구미공장의 휴대폰 협력업체들이 납품중단을 선언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인건비는 계속 오르는 데 원가절감을 이유로 하청ㆍ협력업체에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는 게 이들의 단체행동 이유다. 실제로 S전자는 2002년 원가절감 중 일부를 협력업체의 납품단가 인하(6~9%)를 통해 해결했고, 2003년엔 이런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부과 받기도 했다.
하청업체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는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유가폭등에 따른 피해가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소 하청업체의 아픔은 어느 때보다 더하다. 특히, S화학처럼 대기업에서 원료를 받아, 납품도 대기업에 하는 구조를 가진 기업들은 폐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까지 나오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도 결국 화주인 대기업이 경유값 폭등에 따른 화물차주들의 고통을 외면한 것이 화근이었다. 중간에 낀 운송업체를 방패 삼아 운송료 인상에 뒷짐을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들은 이런 아픔을 덜기 위해 그간 원재료값 상승을 납품단가에 반영하는 물가연동제를 대기업측에 요구했다. 하지만 대기업 권익 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제도도입이 무산되기도 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상생협력을 외치는 겉모습과는 달리, 실제로는 대기업과 전경련이 똘똘 뭉쳐 하청업체들의 요구사항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행히도 지난 12일 공정거래위원회가 하청업체들이 대기업에 납품단가의 조정협의를 신청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키로 해 중소기업들이 애로를 조금이나마 덜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 대기업들의 하도급 업체에 대한 횡포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최근 공정위가 과거 3년간 하도급법을 많이 위반한 업체와 잘 지킨 업체를 조사한 결과, 상승위반업체는 지난해 52개에서 올해에는 72개로 늘어난 반면, 모범업체는 15개에서 5개로 급감한 것으로 집계됐다.
물론, 대기업들의 고통도 클 수밖에 없다. 고유가로 인한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가시화되고 있는 반면, 글로벌 경쟁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의 선순환을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같이 살아나지 않고는 대기업만이 독야청청할 수는 없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고환율정책에 힘입어 대기업들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고 있는 데도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며 “상생협력을 선언하는 데 그치지 말고, 실제 거래에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중소기업 지원을 ‘비용’의 개념이 아니라 향후 이익 증가를 위한 ‘투자’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따뜻한 시장경제주의에 입각한 배려가 절실하다는 것. 김주훈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제가 힘들다는 핑계로 대기업들의 떠넘기가 행태가 만연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어느 때보다 상생을 위한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대기업들의 상생노력을 주문했다.
박기수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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