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선릉로나 서초동 법원 앞길의 풍경이 크게 바뀌었다. 새 건물이 많이 생겨서가 아니다. 지금 쯤이면 가지를 높이 쳐들고 하늘을 가릴 듯 잎이 무성했을 플라타너스의 낯선 모습 때문이다.
우뚝한 몸통과 굵은 팔뚝만 남은 채 뭉툭하게 가지가 잘려나간 자리에 몽글몽글 잎이 돋았다. 어찌 보면 설치작품 같기도 하고, 날이 어둑할 무렵이면 거인들이 줄지어 선 듯하다. 어른 허벅지만한 굵은 등걸까지 잘라낸 ‘전위적’ 가지치기와 어떤 치명적 상처도 끝내 극복하고야 마는 플라타너스 특유의 생명력이 결합해야 가능한 결과다.
■때로는 섬뜩할 지경인 이색적 풍경을 연출한 것만으로도 해당 구청은 쾌재를 부를 만하다. 그런데 볼수록 아니다. 플라타너스의 자연스러운 풍성함과는 거리가 멀다. 가로수의 가지치기야 물론 필요하다. 웃자란 나뭇가지가 신호등을 가리거나 전깃줄을 밀어 사고 위험을 높인다면 당연히 잘라야 한다. 그러나 정도껏 해야 한다. 어지간한 다른 나무였다면 아예 새 잎과 가지를 싹 틔우지도 못할 만큼 굵은 가지까지 마구 잘라내는 것은 가지치기라기보다 학대에 가깝다. 더욱이 풀뿌리 차원에서 끊임없이 자연사랑을 가르쳐야 할 지방자치단체가 앞장 설 일이 아니다.
■알고 보면 플라타너스처럼 고맙고, 가로수로서 적합한 나무도 드물다. 공해에 강해 매연을 뒤집어 쓰면서도 잘 자랄 뿐만 아니라 가로수 가운데 가장 크고 무성한 잎으로 온갖 일을 한다. 혼탁한 도시의 공기를 걸러 청량한 산소를 뿜어준다.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왕성한 증산작용으로 대기에서 기화열을 빼앗아 기온을 낮춰준다. 플라타너스 한 그루가 에어컨 10여대 역할을 거뜬히 해낸다. 혹독한 가지치기를 겪고 난 플라타너스 잎의 총 표면적은 자연상태의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수많은 천연 에어컨을 갖다 버린 셈이다.
■이색풍경을 빚으려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던 일부 지역을 뺀 대부분의 플라타너스 학대가 얄팍한 상혼에 기댄 것이라는 얘기는 더욱 기가 막힌다. 나뭇가지가 간판을 가리지 않도록 잘라 달라는 민원이 자치단체를 움직였다고 한다. 실제로 중앙분리대의 플라타너스만 그대로 둔 곳도 있다.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얼룩덜룩 보기 흉한 간판에 누가 얼마나 눈길을 준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나마 지저분함을 가려주던 플라타너스의 무성한 잎사귀가 사라진 후 도시의 치부만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나고 있는 건 아닐까.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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