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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쇠고기 협상 게임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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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쇠고기 협상 게임 II

입력
2008.06.1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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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쇠고기 추가협상 게임을 지켜보면서 우리 선수들이 이제야 게임의 원리를 터득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협상을 아예 접을 듯한 몸짓을 하자, 미 무역대표부(USTR) 쪽에서 황급히 한 발 후퇴했다는 이야기가 그럴 듯해서다.

미국학자 토마스 쉘링은 일찍이 ”협상력은 물러설 곳이 없다고 선언하는 데서 나온다”고 국제협상의 게임 법칙을 요약했다. 거센 촛불 민심을 업은 우리 쪽은 애초 미국 쪽 게임 상대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이었다.

진작 그런 식으로 했으면 일방적 양보로 쇠고기 수입 협상을 졸속 마무리, 촛불시위와 정부의 위기를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국 정부의 국제협상 대표는 흔히 협상 테이블에 앉자마자 “당신네 요구를 받아주고 싶지만 의회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탄한다고 한다.

강력한 권한을 지닌 의회의 승인을 얻기 힘든 처지를 거꾸로 협상 무기로 삼는 것이다. 이처럼 국내 여론과 의회 등의 견제는 협상대표의 입지를 넓히고 협상력을 키운다. 국내의 폭 넓은 합의를 중시하는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협상대표가 국내 견제에서 자유로울수록 협상력은 오히려 약화한다. 상대의 무리한 요구를 국내 압력을 핑계로 뿌리칠 수 없기 때문이다.

■쇠고기 수입 협상에 얽힌 미국 쪽 뒷얘기를 들을수록 아쉬움이 크다. 미 육류수출협회 회장은 “원래 기대보다 많은 걸 얻었다”고 희희낙락, 남의 복장을 긁었다.

며칠 전에는 농업전문 인터넷 매체가 “30개월 미만 쇠고기부터 수출하자는 업계 제안을 정부가 외면, 수출 기회를 놓치고 파란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웬 떡이냐고 반기다 당장 먹을 수 없게 되자 정부를 원망하는 것이겠지만, 미국의 협상 전략에 놀아나 떡보따리를 그냥 내준 어리석음을 일깨우는 듯하다.

■두 이야기를 묶으면, 미국은 직접 이해가 걸린 업계의 제안을 외면한 채 가장 유리한 협상 타이밍을 기다렸다. 절호의 기회는 물론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다.

한미관계 강화와 FTA 조기비준을 외친 대통령이 막후 협상대표처럼 워싱턴에 머무는 사이 진행된 쇠고기 협상 게임에서 우리 선수의 창의적 플레이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이런 사리에 익숙한 나라는 상대 협상대표의 격이 높을수록 반긴다. 국가 정상과의 회담을 가장 선호한다. 통 큰 양보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기 쪽에서는 되도록 급이 낮은 선수를 내보낸다. 다른 조건을 무시한다면, 말단 공무원일수록 적임이라고 한다.

강병태 수석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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