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출범 100일을 넘겼음에도 미디어정책에서 이렇다 할 실적을 올리기는커녕 방향타조차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언론학자들은 현 정부의 미디어정책은 청사진과 소통, 정통성이 부재한 ‘3무(無) 정책’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같은 지적은 보수-진보 진영을 가릴 것 없이 공통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 청사진은 없는데…
언론학자들은 현 정부 미디어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청사진 부재를 꼽았다. 3월 방송통신위원회의 공식 출범으로 정책추진의 기본뼈대가 완성됐지만 미디어 법ㆍ제도 개정은 정작 ‘개점 휴업’상태나 다름 없다는 것이다.
당초 이 대통령은 취임 전 정치권과 학계, 언론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21세기미디어위원회를 구성,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변화에 발맞춘 정책을 입안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그러나 정권 출범 후 21세기미디어위원회는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대신 한나라당이 당내에 21세기미디어발전특별위원회를 설치키로 의견을 모으고 정병국 의원을 위원장으로 내정했으나 출범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정책 추진의 구심점 부재에 따라 9월 첫 서비스에 들어가는 IPTV(초고속 인터넷망을 이용한 TV방송)와 신문ㆍ방송 겸영 허용여부 등 발등의 불인 미디어 관련 현안들도 진척이 없다.
최창섭(서강대 명예교수) 뉴라이트방송통신정책센터장은 “방통융합의 핵심인 IPTV관련 법규조차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미디어 정책을 끌고 갈 견인차 역할의 기구가 없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 소통 시도 조차 않고…
청사진 부재와 함께 언론단체, 특히 진보적 성향 단체와의 소통 부재도 현 정부 미디어 정책의 난맥점이라는 의견이 많다. 미디어 정책의 추진에 있어 잠재적인 반대세력의 동의를 구하려는 시도조차 전무했다는 것이다.
국민과의 소통 노력이 아예 없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여러 언론단체와 학술단체의 세미나가 봇물을 이루고 있지만 정부차원의 미디어 정책 관련 토론회는 한차례도 열리지 않고 있다. 단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나 신재민 문화부 차관 등의 입을 통해 미디어 구도 재편에 대한 단편적인 의견만이 흘러나왔을 뿐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툭툭 내뱉는 말은 불필요한 갈등만을 초래할 뿐”이라며 “정부가 체계적인 안을 내보이고 사회 각계가 참여, 1년 이상 심도 있게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KBS2와 MBC 민영화 등 미디어 구도 재편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민감한 문제이므로 국민의 의견을 듣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정통성까지 약화돼
이명박 정부는 대선과 총선을 통해 정책 추진의 굳건한 정통성을 확보했지만 정작 미디어분야에서는 정통성 시비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대선캠프의 상임고문 출신인 최시중씨의 방통위 위원장 선임 과정이 초래한 잡음은 많이 잦아들었으나 여전히 정책추진 엔진은 실종 상태라는 평가가 많다.
특히 최근 구본홍 전 이명박 후보 방송상임특보의 YTN 사장 내정, 양휘부 전 방송특보단장의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선임 등이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 하락을 야기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임명 절차상에 문제는 없지만 사실상 ‘낙하산 인사’로 정권에 대한 여론의 불신과 언론계의 갈등만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성동규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공공성과 중립성을 지켜야 할 언론계의 잘못된 인사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며 “이 대통령 측근 출신들의 언론사 대표 선임은 무조건 배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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