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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항일운동 조명 국제학술대회/ "천도교 등 민족종교, 독립군 군자금 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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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항일운동 조명 국제학술대회/ "천도교 등 민족종교, 독립군 군자금 조달"

입력
2008.06.1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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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천도교와 태을교 등이 독립운동자금을 모으고, 청림교가 항일무장투쟁을 하는 등 민족종교들이 펼쳤던 항일운동을 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한국민족종교협의회(회장 한양원)가 26일 오후 2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하는 민족종교 국제학술대회에서 허영길 중국 옌볜박물관 근현대사 연구실장은 동학과 단군신앙을 결합한 민족종교인 청림교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청림교는 1920년대 무장조직 ‘야단’을 조직해 직접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으며 북로군정서와 합병했다. 허 실장은 “야단과 북로군정서의 합병은 당시 북간도 지역의 반일무장투쟁단체들의 연합에 적극적인 영향을 주어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등이 봉오동에서 북로독군부를 조직, 봉오동 전투를 수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청림교도들은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 승리를 위해 군자금을 모으고 군수품을 제공했다. 일제는 청림교를 ‘가장 견인한 민족독립운동단체’로 보고 1944년 청림교사건을 조작해 120여명을 체포하고 50~60명을 살해했으며, 청림교는 탄압을 받아 소멸했다.

성주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 연구원은 “일제는 기독교나 불교보다 민족성을 일깨우는 민족종교를 더 탄압했지만 천도교를 주축으로 한 민족종교는 ‘성미’ 또는 ‘치성금’이라는 이름으로 독립군의 군자금이나 임시정부의 활동비를 조달했다”고 밝혔다.

천도교는 3ㆍ1운동 직후 ‘특별 성미’로 교인 1인당 3~10원씩 모두 30만원을 모아 독립군에 전해 무기 구입에 쓰도록 했다. 태을교도 1920년대 초반 독립 운동 자금을 모으다 일제에 붙잡혀 옥고를 치른 교인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한양원 회장은 “천도교 대종교 청림교 원종교 등 4개 민족종교가 만주에 세운 학교가 20여 개에 달한다”면서 “민족종교들이 독립, 구국운동에 앞장섰지만 일제의 핍박을 당해 자취도 없이 사라진 역사를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남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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