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부실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실물경제의 악화가 금융권 부실로 전이되면 결국 ‘신용경색→중소기업ㆍ자영업자 자금난 악화→도산→실업 및 경기침체 가속화’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아직 위기신호가 가시화되지는 않았지만 선제적 대응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때”라고 입을 모은다.
■ 잇따르는 경고
18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주재로 열린 경제동향간담회에 모인 경제전문가들은 “최근 은행들의 적극적인 외형성장 전략이 자칫 부실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참석자들은 “요즘 가파르게 늘고 있는 시중 유동성은 가계와 기업의 대출수요 증가에도 원인이 있지만 은행들이 공급 측면에서 과도한 경쟁을 벌인 탓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대출기업의 수익성이 하락할 경우 부실채권 확대요인으로 작용해 금융불안정성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통화ㆍ감독당국이 보다 면밀한 살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감독당국도 최근 들어 부쩍 경고의 수위를 높여왔다. 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13일 시중은행 리스크 담당 부행장들을 만나 대내외 경제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을 조목조목 거론하며 리스크관리 강화를 강조했다. 금융연구원 구본성 연구위원은 “최근과 같은 경기하강 성격의 금융불안은 2003년 카드대란 이후 처음”이라며 “당국도 상당히 위기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짙어지는 먹구름
금융권 부실은 보통 경기침체에 후행(後行)한다. 그런 만큼 미리 조짐을 찾아내 대응하기란 쉽지 않은데, 현재 일부 위험 신호들이 감지되고 있어 긴장감을 더해주고 있다.
우선 올들어 급증한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지난달 말 현재 국민ㆍ우리ㆍ신한ㆍ하나ㆍ기업은행 등 5개 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잔액(266조9,936억원)으로 전달보다 2.2% 증가했다. 5개월 연속 증가세이자 올 들어서는 매달 증가율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고유가 등 경영환경 악화에 따라 중소 기업들의 운전자금 수요가 증가한데다 은행간 대출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 하지만 유사시 은행들의 자본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는 대목임엔 틀림없다.
실제 금융감독원이 올 3월말 현재 국내 18개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집계한 결과, 작년 말보다 0.34%포인트 하락한 11.94%를 기록했다. 금감원은 올 들어 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확대로 위험가중자산이 늘어난 것을 BIS 비율 하락 원인으로 지목한 바 있다.
금융연구원 신용상 거시경제팀장은 “갈수록 예대 금리차가 줄어들면서 은행들이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며 “경쟁이 치열해지면 자연히 대출대상에 대한 신용평가가 소홀해져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분석했다.
■ 은행들 우산 준비에 안간힘
당사자인 은행들도 이를 모를 리 없다. 국민은행은 무리한 대출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최근 내부 기준금리를 상향 조정했다. 신한은행도 위기요인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외화유동성비율 및 고유가, 원자재 가격, 해외 리스크 등의 변수를 면밀히 점검중이다.
수년간 자산을 크게 늘린 우리은행은 자산성장 속도를 조절하며 사업부별 균형을 맞춘다는 전략을 짰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은행들이 자산을 급격히 늘리는 과정에서 누적된 부실자산이 하반기에 가시화하면서 연체율 상승과 건전성 훼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대비중”이라고 말했다.
신용상 팀장은 “비이자 수익 비중 강화 등 중장기적 체질 개선이 근본 대책이지만 우선 위험대출을 줄이고 펀드판매 등 다른 수익원에 집중하는 방향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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