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대통령 선거 때 일이다. 당시 아칸소 주지사였던 애송이 빌 클린턴이 민주당 경선에서 쉽게 당선되자 공화당은 내심 환호했다. 당 일부에선 `민주당에 아무리 인물이 없기로 클린턴을 대통령 후보로 선택했는가'라며 비웃기까지 했다. 워싱턴의 정치 전문가들 대다수는 부시 대통령이 압도적으로 재선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그 때만 해도 미국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조그만 주의 주지사인 클린턴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더욱이 클린턴은 징집영장을 불태우고 영국으로 도망친데다, 여자관계가 복잡한 플레이보이로 알려진 문제가 많은 후보였다.
클린턴은 얼굴이 항상 불그스레하고 스포티한 미남에다, 조화가 잘된 멋진 체격에 강한 남쪽 사투리로 카리스마가 넘친다는 것 외엔 별로 내세울 게 없었다. 또 그의 부인 힐러리는 아칸소 주의 변호사로, 지나칠 정도로 진취적인 여자로 알려져 있었다.
반면 부시 대통령은 군대에 있을 때 전투기 조종사였고, 전직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레이건 대통령 시절 부통령을 지내는 등 그 화려한 경력이 클린턴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또 부인 바바라 여사는 전통적인 영부인답게 조용히 집안에서 내조만 하는 형이다. 그래서 당시 민주당에선 거물급들이 아예 대통령 후보 야심을 접었고, 클린턴 같은 정치 애송이가 별로 심각한 경쟁자 없이 후보로 당선된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는 부시의 압도적 재선을 예측했고, 공화당은 일찌감치 샴페인을 터뜨렸다.
그런데 이변이 생기기 시작했다. 공화당은 걸프전쟁 승리 등 부시의 찬란한 업적을 내세우며 클린턴의 캐릭터 죽이기(Character Assassinations) 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 정도만 해도 쉽게 이길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었다. 다시 말하면, 클린턴을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서는 전국적으로 생방송되는 TV 토론회가 네 차례 정도 열리며, 이 것이 당락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첫 번째 TV 논쟁에서 부시 대통령은 클린턴에게 참패했다. 공화당은 부시의 업적을 지루하게 자랑하기에 바빴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는 없었다. 반면 클린턴은 저 유명한 " It's the Economy, Stupid!" (문제는 경제야, 멍청아!) 라는 한 개의 메시지에 집중했다.
클린턴은 항상 얼굴에 미소를 띤 채 국민을 향해 "여러분들이 4년 전보다 지금 더 잘 산다고 생각하면 부시에게 표를 던지고, 그렇지 않다면 나와 함께 앞으로 4년간 여러분의 재산을 두 배로 늘립시다", "경제가 나빠지면 부자들만 더 부자가 되는데 부시는 부자만 도와주는 부자"라고 공격했다. 또한 저 유명한 중도파 (Centrist)란 말을 인용해 자기는 다시 태어난 민주당원 (Born-again Democrat)으로 분배에 앞서 경제부터 살리겠다고 선언했다. 어차피 민주당원들은 자신을 지지할 것으로 판단하고, 중도를 내세우며 보수표를 겨냥한 것이었다.
이 전략은 그대로 맞아들어갔다. 처음에는 국민들이 그의 경제 우선 메시지에 의아해 했지만 클린턴 진영에는 유명한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들이 있었다. 오직 경제 살리기라는 메시지만을 강조하는 클린턴 후보에게 부시가 내세우는 과거의 업적들은 너무나도 초라해 보이기 시작했다. 더욱이 점점 악화되는 경제지수는 부시 진영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마침 그 때 제니퍼 플라워즈라는 나이트클럽 웨이트리스 출신의 미모의 여자가 나타나 자기가 클린턴의 오랜 정부라고 폭로하면서 언론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특종감이 터졌다. 부시 진영도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며 기뻐했다.
하지만 클린턴은 그녀를 사귄 적은 있지만 성관계는 일절 없었다고 강력히 부인했고, 부인 힐러리도 가세해 남편이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옹호하는 상황에서 여론은 금세 수그러졌다.
더욱이 힐러리는 "나는 집에서 과자나 굽고 남편 저녁이나 해주면서 아이를 돌보는 그런 무력한 영부인이 될 수는 없다. 여성 운동가로 적극 활동하겠다"고 나섰다. 젊은 변호사로, 나름대로 뚜렷한 주관을 지닌 힐러리는 "여러분이 내 남편 클린턴을 당선시키는 것은 나까지 합쳐 두 명의 대통령을 뽑는 것이다" 라는 말로 그 당시 팽창하던 페미니즘 (여성운동) 단체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클린턴 진영은 여기에 더해 젊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테네시 주 출신 상원의원 앨 고어를 러닝메이트로 선정했다. 이에 당황한 공화당 진영에선 젊고 미남으로, 전혀 알려지지 않은 댄 퀘일을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선택했다.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클린턴의 치솟는 인기에 대처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나는 이전에 댄 퀘일을 서너 번 만났고 여행도 같이 했지만 과연 텔레비전 토론에서 앨 고어를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학생들 앞에서의 연설 중 Potato(감자)의 스펠링?Potatoe라고 잘못 적어 감자의 스펠링도 모르는 부통령 후보라는 등 망신을 당하면서 부시에게 오히려 짐이 되었다. 부시는 TV 토론에서 클린턴에게 참패했고, 퀘일 역시 TV 토론에서 고어에게 참패했다. 결국 경제를 들고 나온 클린턴이 당선됐다.
한국도 이명박 대통령이 기업 최고경영자(CEO)라는 경력을 앞세워 경제회복에 대한 국민적 기대 속에 여러 가지 비리 관련 의혹을 극복하고 당선됐다. 독재자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앙 받고, 미국에서 레이건이 카터 대통령의 재선을 좌절시킨 것, 그리고 클린턴이 부시의 재선을 무산시킨 것은 모두 경제 때문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국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먹고 사는 문제, 다시 말해 호주머니 사정이란 사실은 만고의 진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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