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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그깟 영어 때문에…

입력
2008.06.18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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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가 어렵다지만 파리에서는 꼬마들도 다 프랑스어를 하더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언어는 의사소통이라는 ‘목적’을 충족시키는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국제 언어’로 자리잡은 영어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영어 자체가 ‘목적’이 되는 ‘전도현상’이 일어나고있다. 그 결과가 ‘조기유학 광풍’이다.

한국일보가 지난 주 5회에 걸쳐 보도한 창간기획 ‘동남아 조기유학 광풍’을 읽어보면 조기유학의 ‘허와 실’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특히 조기유학에 따른 각종 부작용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한 것은 많은 공감을 줬다. 광풍은 비단 동남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한국인 조기유학 현장에서도 흡사한 일이 벌어진다.

미국 연수시절 수많은 한국의 ‘기러기 가족’과 ‘나홀로 조기유학생’들을 지켜보고 얻은 결론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엄청난 외화 낭비는 차치하더라도, 추후 ‘가족의 위기’라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할 소지가 많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자녀들의 영어 공부’라는 목적외에 ‘시부모와 갈등’, ‘남편과의 불화’ 등을 회피하려는 부차적인 목적이 있을 때 기러기 생활은 장기화한다. 기러기 생활을 제법 한 어떤 분은 남편이 오면 ‘손님’처럼 불편한 존재로 느껴진다고 했다. 부모와 자녀간 갈등도 많이 발생한다. 외국에서 엄마 혼자서 자녀를 관리하면 힘에 부칠 때가 많고,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빠가 이역만리를 한걸음에 달려갈 수도 없다. 컴퓨터에서 메신저를 켜놓고 혼내는 것이 전부다.

자녀들 역시 손님처럼 찾아오는 아빠를 부담스러워 한다. 아빠도 1년에 한 두 번 보는 아이들이 사랑스럽겠지만 야단칠 일도 그만큼 쌓여있다. 아빠가 오면 아이들은 긴장하고, 부담을 느끼다 못해 싫어한다. 교육적 측면에서 아빠와 엄마가 자녀 곁에서 ‘강온 양면작전’으로 보살펴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친인척집 등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조기유학을 할 경우 엇나갈 확률이 더욱 높다. 이런 과정에서 남편과 아내, 아빠와 아이들간 ‘심리적 거리’도 점점 멀어진다. 엄마와 아이들간 갈등도 증폭되지만 이를 중재할 아빠는 현장에 없고 부부간 대화도 점점 어려워진다. 기러기 가족을 전제로 하는 조기유학의 폐해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한 식탁에 모여 한솥밥을 먹고, 한 지붕 아래 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사소한 가족 갈등은 해결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자녀의 영어 공부를 위해 잠시 가족의 행복을 저축하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시간을 붙잡을 수 없듯, 가족의 행복도 저축할 수 없다는 것이 경험자들의 이야기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사회의 비이성적 ‘영어 광풍’이다. 영어 실력이 개인 능력 판단의 일차적인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초래될 수 밖에 없는 결과다. 광풍에 비할 때 한국 학생들의 영어 성적이 그리 높은 것도 아니다. 정도가 심하고 방향도 틀렸다.

오히려 한국 아이들에게 경쟁력이 있는 것은 수학과목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미국 시애틀에 본사를 둔 마이크로소프트사에는 수천명의 인도 사람들이 근무하고있다. ‘9ㆍ9단’이 아닌 ’19ㆍ19단’을 외우는 인도인들이 세계 최첨단 기업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가장 큰 요인은 수학 실력이다. 일본도 영어를 잘해 경제대국이 된 것이 아니다. 방향을 바꿔야 한다.

조재우 피플팀장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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