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고유가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정부가 대형마트를 통한 석유제품 공급과 석유 완제품 수입을 전격 발표하자 ‘대표적인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독과점 체제를 형성하는 정유사 간의 경쟁을 유발, 소비자 가격을 내린다는 복안이지만 기대대로 될지는 미지수라는 것.
우선 대형마트에 주유소를 세워 자기상표로 판매토록 해 가격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아이디어가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대형마트에 주유소를 설치하는 것 자체가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 최대 할인점인 월마트는 편의점과 주유소를 함께 운영하고, 영국의 대형 유통업체인 테스코도 주유소 겸용 편의점인 익스프레스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도시 외곽에 위치한 반면 국내 대형마트의 주요 점포들은 상당수가 도심에 있어 추가용지 확보가 쉽지 않다. 따라서 주로 신규 입점하는 곳을 중심으로 주유소를 설치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주유소가 많을수록 가격협상력이 높아져 정유사들로부터 기름을 싸게 공급 받을 수 있는 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태”라고 토로했다.
더 큰 문제는 대형마트들이 정유사 간의 가격 경쟁을 유도한다는 정부의 취지와는 반대로 특정 정유사들과 배타적 계약을 통해 석유제품을 공급 받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대형마트가 겉으로는 자체 상표를 붙이겠다고 하지만 뒤로는 유리한 가격에 기름을 공급 받기 위해 특정 정유사와 손을 잡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업계에서는 “0마트와 0정유사가 석유제품 공급계약을 하기 위한 실무 협상을 마치고 사인만 남겨두고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특히 유통업체들은 배타적 계약을 할 경우 정유사로부터 주유소 설치비용을 지원 받을 수 있어 초기 투자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대형마트와 특정 정유사와 배타적 계약을 할 경우 당초 의도한 대형마트의 바잉파워(구매력)가 사라져 가격 인하효과는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석유제품 수입을 통한 가격인하 유도도 시장 상황을 무시한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다. 최근 수입 석유제품 가격이 정유사들이 공급하는 가격보다 높기 때문이다.
석유제품 가격 상승률이 원유가 상승률보다 낮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수입 휘발유나 경유는 한때 시장 점유율 7%까지 올라갔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석유제품 가격 상승률이 유가 상승률을 넘어선 2006년 이후 석유제품 수입은 ‘제로(0)’ 다.
현재 휘발유의 경우 지난 1ㆍ4분기 정유사들이 공급한 공장도 가격(각종 세금제외)은 ℓ당 800원 내외이고, 싱가포르 현물시장에 거래되는 가격은 ℓ당 약 680원 정도다.
언뜻 보기에 수입 석유제품이 ℓ당 120원 가량 싼 것처럼 보이지만 석유제품을 들여오는 비용(해운비와 수입 관세 3%포함)과 국내 유통 비용, 그리고 저장창고 확보와 마케팅 비용 등을 제외하면 수입업체가 기름을 팔아 남길 만한 여지가 거의 없다.
과거 석유수입업을 했던 한모(54)씨는 “현재 싱가포르 현물시장의 추이를 봤을 때는 수입석유제품 수입 업체들이 채산성을 맞추기 힘들 것”이라며 “정부가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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