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정도만 경력이 쌓여도 대부분 서울 대형병원으로 옮기는 바람에 사람이 없다. 간호대학을 돌아다니며 입도선매(立稻先賣) 형식으로 신규 인력을 뽑느라 애를 먹고 있다."(지방 중소병원 간호부장 B씨)
"연봉 3,000만원을 준다고 해도 오겠다는 사람이 없다. 대형병원으로 다 가버린다. 이렇게 간호인력 구하기 힘들면 머지 않아 의료재앙이 닥칠 것 같다."(서울시내 중소병원장 A씨)
간호사 구하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서울 시내 대형 병원들이 최근 병상을 대거 신ㆍ증설하면서 간호인력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어 지방 및 중소 병원마다 간호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음달 1일부터 시행되는 노인요양보험과 내년 3월부터 도입되는 보건교사제(모든 학교에 보건교육과 학생의 건강을 담당하는 교사를 두는 제도) 때문에 간호인력 부족현상은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병원협회 관계자는 "최소 인력의 간호사로 운영되는 병ㆍ의원이 부지기수이며,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며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각종 의료사고 등이 빈발하지 않을 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 대형 병원, '간호사를 확보하라.'
신촌세브란스병원은 2005년 본관(400여 병상)을 신축하면서 그해 간호사 300여명을 새로 뽑은 데 이어 이후에도 매년 70명 이상을 신규 채용하고 있다. 이 병원은 현재 2등급인 간호등급(병상수에 따른 간호사 비율)을 1등급으로 올리기 위해 앞으로도 간호사를 더 충원할 계획이다.
서울아산병원도 내년 암센터 개원에 대비해 올해 700명을 채용할 방침이며, 내년에 1,200개 병상이 새로 생기는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 역시 올해 총 500여명의 간호사를 뽑을 계획이다.
한 관계자는 "서울지역 3차(종합전문) 의료기관 가운데 내년에만 서울보훈병원, 중앙대병원, 강남성모병원 등이 2,300여개 병상을 늘릴 계획인데, 이는 500여명의 간호사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메이저' 병원들이 간호사 채용에 나서면서 지방은 물론이고 서울시내 중소 병원까지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경기도의 한 대형 병원 관계자는 "서울로 가겠다는 간호사를 붙잡으려고 최근 이들의 월급만 5% 인상했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의 한 중견병원 원장도 "최근 월급을 40만원씩 올리는 등 간호사 처우를 크게 개선했으나, 인력유출이 계속되고 있다"며 "120명 정도 있었던 간호사가 지금은 90명으로 감소하는 바람에 억지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 간호인력, 정말 부족한가
병원협회 등은 간호사가 현재 3만7,000명이나 부족하다고 주장하지만, 간호협회는 '그렇지 않다'는 입장이다. 낮은 급여와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에 많은 사람이 쉬고 있거나 병원간 잦은 이동으로 빚어지는 일시적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간호협회에 따르면 자격증이 있어도 쉬고 있는 간호사만 7만5,000명이며, 이 중 4만5,000명은 한창 일할 20~30대이다. 서울의 대형 병원에서 일하는 한 간호사는 "3교대와 잦은 야근, 상대적으로 낮은 보수에다가 일 자체도 격무여서 결혼을 하면 그만 두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대형병원도 보수대비 처우가 엉망인데, 그보다 연봉이 20% 이상 낮은 지방이나 서울 중소병원에는 당연히 취업을 꺼리게 된다"고 덧붙였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도 "새벽과 밤근무를 힘들어 하는 간호사가 많아 이직률이 매우 높다"며 "그만둔 간호사를 보충하기 위해 최근 360명을 추가로 뽑아야 했다"고 말했다.
복지부 역시 한해 약 1만여명의 간호인력이 배출되고 있어, 이들이 정상적으로 취업하기만 한다면 간호사 부족현상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요컨대 간호사 인력난은 공급 부족에 따른 게 아니라, 열악한 처우 때문이라는 것이다.
■ 대책은 없나
복지부는 근본 해결책은 아니지만, 일단 당장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올해 간호학과 정원을 500명 증원한데 이어 내년도에도 950명을 추가로 늘릴 방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금의 입학정원만 3년간 꾸준히 배출돼도 중소 병원들의 간호사 수급난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보이지만, '3D 업종'이라는 인식에다가 병원간 이동이 심하고 중도에 관두는 사례가 많아 앞으로의 상황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간호협회 관계자는 "장롱에 면허증을 쌓아놓고 있는 7만5,000여명의 간호인력을 병원으로 돌아오게 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파트타임 제도를 도입해 이들이 자유롭게 취업할 수 있도록 하고, 유휴 간호인력에 대한 체계적인 재교육시스템을 도입해 재취업을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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