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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마 규스케의 '조선잡기' 국내 첫 번역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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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마 규스케의 '조선잡기' 국내 첫 번역 출간

입력
2008.06.18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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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을 앞두고 조선의 정세가 요동치던 1893년 봄 일본청년 혼마 규스케(本間九介: 1869~1919)가 조선정탐에 나선다. 혼마는 부산에 체재하다가 경성으로 옮긴 뒤 남대문 인근 약방을 거점으로 행상으로 가장하고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 일대를 돌아본 여행기를 남겼다.

이듬해 여수거사(如囚居士)라는 필명으로 4월17일부터 6월16일까지 일본신문 ‘니로쿠(二六)신보’에 이 글들을 연재했으며 7월 1일에는 책으로 묶여나왔다. 혼마의 이 여행기가 <일본인의 조선정탐록 조선잡기> (김영사)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됐다.

■ 구한말 정한론자들의 조선관 생생

책에 실린 154편의 글은 언어와 역사, 기질, 풍속과 생활상, 습속, 경제와 사회상, 국제관계 등 조선에 관한 다양한 주제를 망라한다.

설탕을 복통약으로 알고 아껴먹는 사람들, 얼굴을 가리고 남자의사에게 손을 내밀며 진맥을 청하는 여인, 양산 대신 우산을 쓰고 의기양양해 하는 사람들, 갓을 벗기고 상투를 잡아당기며 싸우는 사람들, 요강을 이고 가는 부녀, 창기와 남색 등 구한말의 조선풍경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천우협(天佑俠)’ ‘흑룡회(黑龍會)’ 라는 우익단체 회원출신의 낭인(浪人)으로, 후일 통감부의 관리가 된 저자의 이력에서 알 수 있듯 혼마의 조선관은 극히 부정적이다.

조선역사를 사대주의의 역사로 폄하하고 있으며, 조선인은 불결하고 자력갱생의 의지가 없으며 부패하다고 멸시하고 있다. 문명국 일본국이 타자의 시선으로 ‘미개화’된 조선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제국주의적 시각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변소’라는 글에서는 “오줌은 더러운 것으로 알려졌지만 조선 사람은 이것을 더운물, 혹은 물처럼 여기며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로 소변으로 얼굴을 씻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적고 있으며 ‘도로’ 라는 글에서는 “부산에서 경성까지의 도로는 우리나라의 마을 길보다도 심하게 울퉁불퉁하다.

의주까지는 도로모양이 나쁘지 않아서 2열의 군대가 행군을 할 수 있다. 의주가도는 사대의 결과로서, 지나 사신의 왕래 길이라 다른 길보다도 더 좋게 만들었다”고 기록한다.

허울만 남은 유교문화를 노골적으로 조롱하는 대목도 보인다. ‘조선의 부녀’라는 글에서는 여자는 항상 내실을 지키고 형제라도 함부로 내실을 출입할 수 없을 정도로 남녀유별을 철저하게 강조하면서도 경성에서는 간부(姦夫)가 여장을 한 채 가마를 타고 들어가 화간하거나 강간하는 악풍이 유행하고 있다고 썼다.

이밖에도 경성에는 청인보다 일본인이 적다며 일본인의 세를 불리는 일이 청국과의 대결을 앞둔 일본의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하는 등 조선침략을 기정사실화하는 정한론(征韓論)적 시각도 엿볼 수 있다.

■ <조선잡기> 의 영향

책을 번역한 최혜주 한양대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는 강화도조약 체결후 10여년이 지난 1890년대는 일본인들의 조선행이 러시를 이룰 때라 일간신문에 연재됐던 이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고 이후 간행된 견문기나 여행기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1920년대에는 총독부관리 마쓰다 코우의 <조선잡기> , 언론인 기쿠치 겐죠의 <조선제국기> (1925) <조선잡기> (1931)가 나오는 등 이후 일본인들의 조선 견문기가 쏟아졌는데, 혼마의 글은 1930년대까지 소개될 정도로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최 교수는 “지은이는 한문에도 조예가 깊은 엘리트로 문헌에 의지하지 않고 실제로 돌아다니면서 본 것을 충실하게 기록했다는 점이 돋보인다”며 “저자의 편견에 의해 왜곡된 사실관계의 오류 등에 대한 후속 연구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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