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숙 전 국립오페라단장은 2002년부터 3년 임기의 단장직을 2회 연임했다. 첫 임기의 마지막 해였던 2004년은 악운의 연속이었다.
정명훈까지 불러들인 9월의 <카르멘> 에선 해외 주역가수 여럿이 출연을 펑크냈고, 10월의 <아이다> 에 라다메스로 출연하기로 했던 한 세계적 테너는 심각한 심장발작으로 오지 못했다. 오페라 팬 사이에선 ‘국립오페라 징크스’란 농담까지 돌았다. 정 단장의 임기가 한번으로 끝났더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다> 카르멘>
그런데도 관객들이 단장의 연임을 이해했던 것은 뭔가 이루려는 의욕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민간 오페라단과 공연장의 기획 오페라에 넘어가있던 국내 오페라계의 주도권이 상근단원제도와 전속합창단,
그리고 참신한 연출을 앞세운 국립오페라로 돌아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임기의 성과는 눈부신 것이었다. 혹독한 수련을 받은 상근단원들은 어느새 주역을 맡기에 모자람이 없는 수준으로 올라섰고, 젊은 합창단은 세계 어디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좋아졌다.
디터 케기와 울리세 산티키 등 국립오페라와 깊은 관계를 맺은 외국 연출가들의 작품은 완성도에 대한 신뢰를 주었고,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국내 연출가들에게 기회를 주면서 예상치 못했던 수작들을 레퍼토리로 보유하게 되었다.
게다가 정규 프로그램인 ‘시즌 오페라’, 입문자를 위한 ‘마이 퍼스트 오페라’, 대중적 인기는 없지만 예술성 높은 오페라를 소개하는 ‘마이 넥스트 오페라’ 등 물오른 기획력이 발휘되면서 국립 오페라단의 성가는 한껏 상승했다.
지난해 12월 예술의전당 화재는 세 번째 연임에 성공했던 단장이 사퇴하는 명분이 되었다. 물론 그 정도의 큰 사건이라면 물러나는 것이 정서에 맞겠지만 과연 국립오페라단이 순항을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후임 단장을 임명하는 절차가 난항을 겪고 있다. 필자는 성악가가 단장을 맡든, 아니면 작곡가나 지휘자, 연출가 중에서 나오든 그것은 본질이 아닌 것으로 본다. 중요한 것은 전임단장의 업적 중에서 계승해야 할 것과 바꿔야 할 것을 제대로 구분해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새 수장이 오면 과거의 모든 업적을 부정하고 완전히 새 틀을 짜는 것이 정치판, 기업, 문화계 등 한국 전반의 풍토다. 이래서는 임기 대부분을 시행착오 속에 보내다가 뭔가 깨달았을 때면 그곳을 떠나야 한다.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인사가 새로운 수장으로 선임되기를 바란다.
음악공동체 무지크바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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