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어린이 박물관학교’의 개교로 우리 박물관을 찾는 ‘어린이 손님’들이 더욱 늘어났다. 학교라는 명칭에 걸맞게 모든 것이 초등학교처럼 운영되지만, 그렇다고 ‘책을 통해서 배우는 학교’는 아니다. 만들기나 그리기, 답사와 같은 체험 학습을 통해서 지역문화를 몸과 마음으로 배워나가는 학교다. 그렇기 때문에 일종의 ‘대안학교’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학교의 개교식이 5월 31일 박물관 체험학습장에서 열렸다. 박물관을 찾은 춘천·원주 지역의 초등학생 50명은 마냥 즐거워 보였다. ‘놀면서 배우는 학교’라는 것이 벌써 알려졌던 모양이다. 그리고 여러 행사가 있었다. 그 중 교장 선생님이 학생들의 목에 일일이 이름표를 달아주는 ‘환영의식’이 있었다.
원래 예정에는 없던 것이었지만, 전상국 교장 선생님(김유정문학촌 촌장)께서 ‘신입생 아이들’과 교감을 나누고, 아이들끼리도 서로 친해질 수 있도록 이름표를 걸어 주면서 아이들에게 한 명씩 장래의 꿈을 큰 소리로 발표하게 하셨다. 그런데 발표를 지켜보던 나는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첫째는 조금도 주저함이 없는 아이들의 자신감이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의 모습과 비교를 해보니 더욱 그러했다. 마지못해 작은 목소리로 꿈을 말한 후 단상을 벗어나기 바빴던 나였다. 그리고 당시의 아이들은 대부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둘째는 꿈의 다양성이었다. 과학자, 대통령, 판사, 검사, 장군, 선생님과 같이 익숙한 직업들도 있었지만 고고학자, 큐레이터, 요리사, 스타일리스트, 컴퓨터 프로게이머가 아이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특히 요리사와 같은 직업은 벌써 구물(舊物)이 되어버린 나로서는 선택하기 쉽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셋째는 꿈의 구체성이었다. 의사도 그냥 의사가 아니고 치과 의사, 정형외과 의사, 한의사로 매우 구체적이었다. 옆에 앉아 계시던 내빈들도 모두 ‘달라진 아이들의 꿈’에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다.
무엇이 아이들을 이렇게 변화시켰을까? 행사가 진행되는 과정에 틈틈이 생각을 가다듬어 보았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인터넷과 TV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매체 속에 등장하는 여러 유형의 인물을 자신의 모습으로 투영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예전과는 다른 꿈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영향도 컸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미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부모님을 지켜보거나,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자신만의 꿈을 몰래 가꾸어나갈 기회를 많이 가지게 된 탓도 클 것이다. 또한 다양성과 감성을 중요시하는 공교육의 역할도 클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꿈은 대체로 논리적 사고나 당위적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과 문화의 경험, 그리고 감성의 충돌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간에 나는 ‘박물관학교 아이들’의 꿈을 들어보면서 마냥 기뻤다. 누군가에 의해서 강요된 꿈이 아닌 듯해서 기뻤다. 그리고 대통령처럼 거창한 꿈이 아니어서 기뻤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신을 심하게 구속하는 꿈보다는, 자신을 자유롭게 펼쳐나갈 수 있는 소박하고 구체적인 꿈을 가진 것이 기뻤다. 더욱이 꿈 뒤에 담긴 요즘 아이들의 생활모습과 여러 생각을 더불어 알게 되어 기뻤다.
이렇게 여러 생각이 이어지고 한편으로는 기쁨을 느껴가는 과정 속에서, 나도 모르게 ‘박물관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꿈’을 1%만 더 가꾸고 돋워 주는 역할을 자임하게 되었다.
유병하 국립춘천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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