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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나무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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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나무와 바람

입력
2008.06.17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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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나무를 비롯한 포플러 종류는 잎자루가 길고 칼국수처럼 납작하다. 그래서 하트 모양인 잎은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린다. 바람이 조금만 세도 바들바들 떤다. 사시나무처럼 떤다는 말은 바로 이 모양에서 유래했다. 백양(白楊)나무라고도 하는 사시나무는 잎 뒷면이 하얀 솜털로 덮여 있다.

바람에 흔들릴 때 앞면의 녹색과 뒷면의 하얀 색이 번갈아 보이는 모양이 멋지다. 앙증맞은 손바닥으로 리드미컬하게 흰색과 녹색의 카드섹션을 벌이는 것 같다. 푸를 대로 푸르러진 나무들 가운데 유난히 사시나무 녹음이 눈길을 붙잡는다.

▦ 이명박 대통령의 가형 이상득 의원 측에서 “나무는 고요히 있고 싶어도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라는 탄식이 흘러 나오고 있다. 이 의원은 사석에서 “나는 인사에 개입한 적이 없다. 제발 나 좀 가만히 내버려두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바람은 더 거세지고 있다. 국정난맥상의 근본 원인은 권력의 사유화라며 이 의원을 정면 겨냥하고 나섰던 정두언 의원은 “끝을 보겠다”고 결기를 드러냈다. 소장파 중진인 남경필 의원도 ‘형님’의 책임을 거론했고 나경원 의원은 형님의 2선 후퇴론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 살아온 역정과 성품으로 미뤄 이 의원이 그렇게까지 인사를 좌지우지할까 싶다. 그러나 본인은 아무리 간섭하지 않는다고 항변해도 대통령의 형이라는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아무 직책도 없이 시골에 살던 대통령 형님에게 돈 싸들고 찾아간 사람도 있었다. 대통령이 동생이 아니라도 막강한 영향력을 지녔을 ‘형님’을 한 자리, 한 건 하려는 사람들이 가만둘 리 없다. 수욕정이풍부지다. 대통령과 사적으로 만나 조언하는 것도, 청와대 비서진 흔들지 말라고 의원들에게 전화하는 것도 정치적으로 문제가 된다.

▦ 어떻게 운신해도 다 정치적 파문이 생긴다. 공천에 관여했든 안 했든 형님공천이고, 형님을 통하든 안 통하든 만사형통(萬事兄通)이다. 그것이 대통령 형님의 숙명이다. 사시나무가 떠는 것은 바람 탓만이 아니다. 수분을 급속하게 빨아올리는 속성수인 이 나무는 이파리를 부지런히 떨어 수분을 공기 중으로 뿜어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작은 바람에도 잘 흔들리는 잎 구조를 갖게 된 것이다. 이 의원도 지금 위치에 있는 한 아무리 고요히 있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구조 속에 있다. 집 주변에 사시나무가 있거든 한번 눈 여겨 보시길.

이계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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