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경 지음/창비 발행ㆍ272쪽ㆍ9,800원
김형경(48ㆍ사진)씨의 일곱 번째 장편은 열일곱 살 여고생 ‘니은’을 주인공으로 한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니은은 서울을 떠나 아버지의 고향 ‘처용포’에서 소일한다. (가상 공간인) 처용포는 고래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던 항구마을에서 포경금지 조치 후 공업단지화된 곳.
엄마 아빠와의 기억에 매달리던 니은은 이곳에서 유능한 고래잡이꾼이었던 ‘장포수 할아버지’와 식당을 운영하는 ‘왕고래집 할머니’를 만나 의지한다. 그리고 어른이 돼야겠다 다짐한다. “할머니는 열다섯에 시집을 갔고 할아버지는 열여섯에 고래배를 탔다는 것. 그리고 나는 열일곱살이라는 것.”(67쪽) 하지만 설익은 다짐만 앞섰을 뿐 치유되지 않은 내면은 압력밥솥처럼 부글대다가, 저를 위로하려 처용포를 찾은 절친한 친구 ‘나무’를 향해 터지고 만다.
바다의 이미지를 차용한 환상성이 넘실대는 이 성장소설은 니은을 중심으로 두 개의 관계망을 그린다. 니은-아빠-엄마 그리고 니은-할아버지-할머니. 니은의 부모는 생전 답답한 서울을 떠나 처용포를 자주 찾았다. 둘은 처용포의 상징인 코끼리바위의 기원을 자기 조상과 연결시키며 스스로를 ‘아랍 상인 처용 후예’ ‘인도 공주 허황옥 후예’로 일컫는 상상의 장난을 치곤 했다.
이 천진난만한 부모의 죽음은 니은에게 상상적 세계의 종언이다. 그녀가 부모를 잃고 처용포를 다시 찾았을 때 그곳은 더 이상 신화적 놀이터가 아닌, 공해로 오염돼 가는 현실적 세계다.
니은은 (육친이 아닌) 할아버지, 할머니와 관계를 맺으면서 자기 연민을 극복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찾게 된다. 평생 까막눈으로 살아온 할머니의 한글 공부를 도우면서 니은은 평생 응어리졌다가 문자를 통해 풀려나오는 도저한 상처의 기억과 대면하게 된다.
보상금마저 외면한 채 쓸모 없어진 고래배를 오래도록 손질해온 할아버지는 ‘고래 테마파크’ 조성을 위해 배를 기증해달라는 요구에 선선히 응하는 듯하더니 어느날 갑자기 밑창 뚫린 그 배를 끌고 바다로 사라져 버린다. 가족처럼 여기던 할아버지의 독단과 실종으로 니은은 또 한 번 상처를 입지만 할아버지의 마지막 선택을 이해하려 애쓴다. “고래들과 계속 교신하기 위한 장치가 그 배에 있었다고도 전해져요. 그 할아버지가 오늘 새벽에 고래배와 함께 고래들의 나라로 돌아갔어요.”(267쪽)
하여 니은은 “엄마 아빠도 장포수 할아버지와 함께 돌아다니다가 처용포 바다로 올라올 것”(268쪽)이라는 기대를 품으며 상상적 세계를 현실적 세계에 포갠다. 신화와 현실이 하나되고, 상처는 또다른 상처와 더불어 치유되고 승화된다. 그 자체가 하나의 신화에 버금갈 만한, 웅숭깊은 스케일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독특한 성장소설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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