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 일본의 동아시아 3국 가운데 고종시대에 왜 우리가 근대화의 지각생이 됐을까라는 의문을 풀고 싶었습니다”
오인환(69) 전 공보처 장관이 고종 연간의 우리 근세사(近世史)를 ‘위기관리’ 측면에서 바라본 <고종시대의 리더십> (열린책들)을 펴냈다. 고종시대의>
그는 책에서 당시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은 어땠는가, 일본이 한국에 끼친 진정한 해악은 무엇인가, 미국은 한반도에서 어떤 위상이었고 앞으로는 어떤 위상이어야 하는가, 고종은 과연 유약하고 무능한 국왕인가 등에 대해 분석한다.
태조에서 정조까지의 조선왕조의 정치사를 리더십 관점에서 풀어 쓴 <조선왕조에서 배우는 위기관리의 리더십> (2003) 이후 5년 만에 내는 역사비평서다. 조선왕조에서>
왜 역사비평서에 관심을 가졌을까. 그는 “민주화와 산업화의 결합을 통해 나라가 부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김영삼 정부에 들어갔는데 외환위기 초래로 그 노력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됐다”며 “책을 쓰는 일이 조금이라도 그 부담을 덜어주고 사회에 무언가 기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책의 저술을 위해 200~300권 가량의 논문, 책을 독파했으며 매일 3,4시간 이상 저술에 매달렸다고 한다. 이 책만 해도 444쪽이 되는 적지 않은 분량이다.
‘망국을 가져온 무능한 군주다’ ‘조선왕조의 패망을 막기 위해 외교력을 발휘했던 유능한 군주다’ 등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고종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외유내강형이긴 했지만 1880년대부터 미국을 활용카드로 인식하는 등 외교적으로 노련한 지도자였다”며 “다만 문제를 정면 돌파하는 기개가 없었다는 점에서 난세에 걸맞은 위기관리 지도자형은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국내 권력투쟁에서 보여준 강한 승부사의 모습과 달리, 을사조약체결을 앞두고 “종기가 나서 고통이 심하다”는 핑계로 이토 히로부미의 면담요청을 거절한 것이 단적인 예다.
그는 “고종 이래의 우리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은 명분론과 실리론의 조화” 라고 강조했다. 위정척사파에서 이어진 명분론의 흐름은 항일의병운동, 무장독립투쟁, 해방 후 반독재 민주화 투쟁으로 이어졌고, 김옥균 등의 개화파에서 이어진 실리론은 식민지 시기 부르주아 우파들의 실력양성론, 건국 이후 우파 산업화 세력, 그리고 현재 ‘창조적 실용주의’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까지 이어졌다는 것이 그의 역사관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실용주의를 내세웠지만, 식민지시기 훼절한 실력 양성론자들의 사례에서 보듯 민족정체성을 거스를 수 있다는 실리론의 부정적 측면을 간과한 것이 ‘쇠고기 정국’ 을 자초했다”고 분석했다.
높아진 국민들의 자주의식을 고려하지 못하고 20~30년 전에나 볼 수 있었던 일방적인 대미의존을 강조하는 외교정책은 이명박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의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는 “어차피 우리사회는 명분론자와 실리론자가 공존공생해야 한다”며 “양날의 칼날 같은 실리론을 깊이 있게 연구해 위기를 탈출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오 전 장관은 28년 동안 언론계에 종사해왔으며 김영삼 정부 당시 공보처장관으로 입각해 YS퇴임 때까지 5년 간 최장수 장관으로 일했다.
이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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