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2일 2007년 의료기관평가 결과 발표가 있었다. 500병상 이상의 86개 종합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의료서비스, 진료의 수준을 나타내는 임상질지표, 환자만족도 등 3가지 부문을 평가해 점수를 매긴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를 두고 아직까지 정부와 해당 의료기관은 물론 국민들까지 많은 이견을 보이고 있고, 평가결과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극명하게 갈라지고 있다. ‘평가를 위한 평가’라는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반응도 여전하다.
의료서비스 수준 향상을 위해 도입된 의료기관 평가가 신뢰성과 효용성에서 의문이 일고, 심지어 ‘무의미한 평가’로 전락한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평가의도가 태생적으로 잘못 설정된 데 있다. 의료기관이 외부지원과 내부개선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균형잡힌 보건환경을 갖추도록 고무하기 보다는, 의료서비스 제공자들을 ’제로섬 게임’에 몰아넣어, 단기간의 의료 질 향상을 꾀하는 데 목적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의료기관 간 불필요한 경쟁을 가져왔고, 평가결과도 마치 사선에서 총을 쏜 후 뒤늦게 과녁을 그려 넣는 것처럼 결과에 꿰맞춘 듯한 어처구니없는 평가가 되고 말았다. 평가방식도 적잖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이번 평가는 329개에 달하는 조사항목을 8명의 인력이 단 이틀간 진행했다. 이틀간 평가결과를 365일 의료서비스의 수준인 것처럼 의료 소비자에게 공표한 것이다. 1회성 보여주기식 평가라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평가 당일 급조된 ‘반짝’ 서비스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평가가 아닌, 일상적인 의료 질 향상을 가늠하는 평가방안이 하루 빨리 나와야 한다.
이렇게 부족한 인력에 의한 ‘수박 겉 핥기’식 평가도 문제지만, 평가를 획일적인 문항으로 일반화해 평가하는 방식도 수정돼야 한다.
우리는 어떤 대상이나 사물에 대한 평가를 간단한 시험지 몇 장으로 쉽게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절대로 지표를 통한 평가나 시험은 대상을 정확하게 평가해 낼 수 없다. 따라서 지표평가에 너무 집착하고, 그 것에 준해 서열을 매기거나, 상벌을 내리기 보다는 ‘합격 또는 불합격’(Pass or Fail) 방식으로 일정기준을 충족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그래야 실질적인 의료기관의 수준향상이나 환경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한 명의 승자를 만들고 다수의 패배를 만드는 식의 현행 평가방식은 평가가 불러올 가장 큰 역기능 가운데 하나이다. 이 것은 의료기관들의 자율적인 정화노력과 건전한 상호 경쟁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된다. 결국 소중한 우리나라 의료자원의 손실을 키우는 것이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의료기관 평가는 장기적 안목에서 모두가 윈윈(win-win)하는 상생(相生)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고 서열을 세우는 것보다는 모두가 승자가 되도록 이끌고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문화가 조성되고 정부 방침도 그렇게 선다면, 의료기관도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처지와 능력에 맞게 개선하는 노력을 보일 것이다.
우리의 건강과 생명이 직결된 ‘의료의 질’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의료의 질과 서비스 향상을 위해 의료기관 평가제를 시행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평가제도의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그 것의 순기능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한 번쯤 원점에서 다시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태훈 가천의대 길병원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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