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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석유값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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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석유값 읽기

입력
2008.06.1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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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장관이자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 회장인 알리 이브라힘 알 나이미가 지난달 중순 방한했다. ‘세계 에너지계의 그린스펀’으로 불리는 그는 서울대에서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제 유가가 천정 모르고 치솟을 때인지라, 그의 특별강연은 안팎의 많은 시선을 모았다.

하지만 그는 “신흥 개발국을 중심으로 석유 수요가 급증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의 유가 불안은 수급 문제라기보다 금융시장의 내부논리 탓”이라고 잘랐다. 공급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국제 투기자본의 사재기가 고유가의 원인이라는 뜻이다.

▦ ‘귀하신 몸’인 그는 명박 학위를 받은 그 날 밤 서울대 총장과의 대담 등 3박4일간의 방한 일정을 전면 취소하고 서둘러 귀국했다. 때마침 사우디를 방문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을 앞둔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국왕이 긴급하게 그를 찾아서다. 예상했던 대로 부시는 세계 경제의 안정을 위해 석유 생산을 늘려달라고 주문했다. “5월부터 미국의 요청에 따라 하루 산유량을 30만 배럴 늘려 수급엔 문제가 없습니다. 더 이상 우리가 뭘 해야 합니까.” 알 나이미가 부시를 면박한 이 장면을 놓고 언론은 ‘부시의 구걸외교’라고 꼬집었다.

▦ 최근 하루 생산량에서 사우디(920만 배럴)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부상한 러시아(950만 배럴)의 에너지기업 가즈프롬이 내년에 유가가 배럴당 25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전망하자 고유가의 원인과 향후 추이를 둘러싼 논쟁이 더욱 뜨겁다. 한 쪽은 투기자본에 의한 ‘거품’을 주장하고, 다른 쪽에선 중국과 인도 등의 ‘과잉 먹성’을 내세운다. 앞의 논점을 뒷받침하는 것은 미국발 서브프라임 부실 이후 갈 곳을 잃은 ‘헤지펀드’이고, 뒤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은 세계의 석유 생산량이 정점을 지났다는 ‘피크 오일(peak oil)’이론이다.

▦ 알제리 석유장관이자 석유수출국기구(OPEC) 의장인 차키브 켈릴은 “작금의 유가 급등은 달러가치 하락에 따른 투기세력 유입 때문이므로 OPEC가 증산을 해도 의미가 없다”고 거품론을 옹호했다. 헤지펀드를 운영하는 조지 소로스도 배럴 당 80달러 대를 넘는 가격은 거품이라고 거들었다. 하지만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나 그레그 맨큐 하버드대 교수는 수급 불균형이 원인이라고 단언한다. 이 논쟁이 중요한 이유는 거품은 언젠가 꺼지지만 수급 불균형은 고착되기 때문이다. 눈앞의 고유가와 함께 그 후를 정확히 보는 눈이 필요한 때다.

이유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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