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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월급 깎을거면 판공비라도 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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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월급 깎을거면 판공비라도 좀… "

입력
2008.06.1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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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아(옛 재경부 관료들을 일컫는 말)'출신으로 국책은행장을 지낸 A씨. 재임 당시 그의 알려진 연봉은 약 6억원, 세후(稅後)수입은 3억5,000만원(월 3,000만원안팎)이었다. 하지만 그는 "재임 중 집에 가져간 돈은 월 1,200만정도 였던 것 같다"고 술회했다.

월급의 절반은 어디로 간 것일까. 각종 경조비, 이런저런 후원금과 접대비로 썼다고 한다. 골프만 해도 그렇다. 그는 "은행장쯤 되면 현실적으로 주요 거래처외에 국회의원, 선ㆍ후배관료 등과 골프를 치지 않을 수 없고 이렇게 나가는 돈이 한달에 700만~800만원은 된다"며 "공기업 규정상 골프비용은 법인카드로 결제가 안되기 때문에 개인비용으로 써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보수 삭감안을 받아든 공기업 기관장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공공기관장 월급을 깎아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와 여론 앞에 내놓고 불만은 못하지만, 앞으로 팍팍해질 현실에 애가 타기 때문이다. 한 공기업 CEO는 "경조사비나 각종 접대를 못하거나, 아니면 집에 돈을 안 갖고 가거나 둘 중의 하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삭감안에 따르면 지난해 5억~6억원의 연봉을 받던 국책은행장들의 경우, 앞으로 3억2,000만원(성과급을 최고상한선의 절반정도 받을 경우)을 받게 된다. 세금을 뗀 실질연봉은 2억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명색이 CEO인데 20만원 하던 경조사비를 10만원만 할 수도 없는 일. 골프를 절반만 칠 수도 없는 일이다. 예전 씀씀이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자기 손에는 한푼도 쥘 수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공기업들은 법인카드로 결제할 수 있는 범위를 확대하거나, 과거처럼 별도의 판공비(기밀비)를 일부 허용하는 쪽으로 감사원과 협의를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감사원이 회계상 융통성을 주지 않으면 CEO들이 현실적으로 활동 자체가 위축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국책은행의 경우, 시중은행과 형평성 및 상대적 박탈감 문제도 나온다. 국책 은행장들은 훨씬 높은 연봉에 수십억원대 스톡옵션까지 받는 시중은행장은커녕, 보통 5억원을 훌쩍 넘는 부행장급 임원들보다도 연봉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또다른 국책은행 관계자는 "행장 월급이 경쟁은행의 잘 나가는 지점장 수준이 됐다"며 "행장 급여가 삭감됐으니 거기에 맞춰 부행장 급여도 낮춰야 하고 결국 직원들까지 당분간 봉급인상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산업ㆍ수출입ㆍ기업은행 등 3대 국책은행을 모두 합쳐도, 이번 급여삭감으로 인한 경비절감효과는 10억원을 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기관성격을 감안하지 않은 획일적 급여삭감은 현실을 모르는 탁상행정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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