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량이 너무 많아 당시 여러 명이 나눠 하느라 문장이 참 껄끄러웠어요. 이번에 혼자서 완역하고 나니 20년 동안 지고 있었던 무거운 짐을 이제야 일부나마 내려놓는 기분입니다.
" 강신준(54)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가 3부작으로 돼 있는 칼 마르크스의 주저 <자본> 중 1권을 20년 만에 다시 번역해 냈다. 그는 "해묵은 빚을 이제야 갚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자본>
여전히 '겨울 공화국'이었던 1987년, 출판사 이론과실천은 <자본> 제 1권을 남한땅에 투하했다. 고려대 독문과 시절부터의 친구가 운영하고 있던 그 출판사는, 시국 사건으로 제적된 학부생들의 집합소나 다름없던 곳이었다. 당시 농협 중앙조사부에 근무하며 고려대 경제학과 대학원을 다니고 있던 강 교수는 6명이 나눠 번역한 원고의 최종 점검과 교열을 담당했다. 자본>
인쇄 상태가 너무나 조악해 눈을 갖다 대야 겨우 알아볼 정도의 독일어 복사본을 텍스트로 한 작업이었다. "너무나 열악한 상황 탓에 엄청난 분량을 제대로 소화해낼 만큼의 여유가 없었어요. 번역문이 거칠 수밖에요."
최근 교수신문이 "학회지ㆍ계간지의 편집 위원 103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1948년 정부 수립 후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책으로 선정됐다"고 밝힌 <자본> 은 그렇게 우리와 낯을 텄다. '자본' 번역본은 강 교수 등이 독일어 원서를 직접 번역한 것과 영어판을 번역한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자본론' 등 단 두 종에 불과하다. 자본>
"부의 원천은 인간의 노동에 있어요. 노동 하지 않는 사람이 부자가 되는 사회의 모순이 존재하는 한 <자본> 은 언제든 유의미합니다." 강 교수는 또 "노동하는 자가 가난해 지는(working poor) 21세기의 신자유주의에서는 마르크스가 제기한 문제 의식이 더욱 첨예해 진다"고 지적, 개역한 <자본> 이 우리 시대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자본> 자본>
이제 문제는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이다. "소수가 독점하는 행복이 아니라, 다수가 나누는 행복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는 현실적 가능태의 하나가 북유럽식 사회주의라 보고 있다.
"마르크스를 포기한, 스칸디나비아식 사회민주주의 말입니다." 한편 저항 청년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체 게바라는 남미의 특수한 상황 하에서, 미국에 대한 정치적 투쟁으로 이해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강 교수는 스스로를 제 2세대 마르크스주의자로 자리 매긴다. 박영호 김수행 정운영 등 한신대를 중심으로 한 1세대, 자신을 비롯해 김기원(방통대) 정영진(경상대) 김호균(명지대) 등 지난해 20주년을 맞은 사회경제학회원 중심의 2세대, 유동민(충남대) 전창환(한신대) 송원근(진주산업대) 등을 대표로 하는 3세대 등으로 면면히 흐르는 맥을 말한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는 생활하기 힘든 게 현실인 이 곳에서 그들 젊은 연구자의 존재는 귀하다.
그는 "2세대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라면, 3세대는 화폐금융 문제를 천착한다"며 국내 마르크스주의 연구의 지형도를 그렸다. 그의 궁극적 관심은 경제 민주화다. 이는 곧 현 정권과 대치되는 부분이다.
"시장에 맡기자는 현 정권의 논리는 재벌과 대기업을 옹호하는 독점자본주의론이죠." 이와 관련해 강 교수는 "경제적 독재 체제의 현시대에서, 민주화라는 문제를 두고 현실과 소통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책의 점수요? 80점 정도겠죠." 강 교수는 연구년으로 공부 시간이 충분한 내년 중으로 나머지 두 권을 다 내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마르크스는 죽었다!'라 하는 것은 가난과 노동의 불일치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며, 이는 마치 '예수는 죽었다!'라며 인간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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