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버리는 것도 불사하던 조선조 순정파 여인들은 언제부터 신분상승을 위해 남성을 유혹하는 팜므파탈(femme fatale)로 변모했을까?
조선후기 상업의 발달로 '교환가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 시기 소설 속 남녀 간의 사랑의 개념이 변모했고, 새로운 남녀캐릭터가 탄생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윤채근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는 21일 열리는 한국한문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발표할 기고문 '조선 후기의 섹슈얼리티'에서 이 같은 해석을 선보였다.
윤 교수는 17~19세기 애정소설에 나타난 남녀 애정관의 변화를 '정념(情念)의 담론' 과 '이익(利益)의 담론'이라는 틀로 설명한다.
그는 17세기 소설 속에서 애정관계는 이해타산이 배제돼있는 관계이며 등장인물들은 남녀 구분없이 '사랑' 만을 공유하던 정념의 화신이라고 본다. 17세기의 대표적 한문소설인 <주생전> <운영전> 등은 '정념의 담론'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운영전> 주생전>
가정교사의 누이동생인 선화와 사랑에 빠져, 첫사랑 배도를 죽음으로 내몰면서도 선화를 잊지못하는 <주생전> 의 주인공 주생이나, 안평대군의 궁녀 운영을 사랑한 끝에 함께 정사(情死)하는 소년 선비 김진사와 운영은 운명에 대한 손익계산과 무관한 순애보적 인물이라는 것이다. 주생전>
반면 18세기 이후 작품속에서 애정관계는 <정향전> <종옥전> <지봉전> <오유란전> 등 당대 유행했던 남성훼절(毁折)소설들이 보여주듯 '사랑'을 경제적 교환가치로 인식하는 '이익의 담론'으로 분석할 수 있다. 오유란전> 지봉전> 종옥전> 정향전>
남성훼절소설이란 여색에 대해 초연해 정남(貞男)으로 자처하던 주인공이 자신과 다른 성도덕 관념을 가진 남성의 사주를 받은 기녀로부터 유혹을 받아 신념을 꺾는다는 줄거리의 소설이다.
윤 교수는 이 소설들에서 유혹에 나서는 기녀들의 섹슈얼리티는 남성의 이익-경제 모델 속에서 소비될 수 있는 '교환가치' 로만 기능한다고 본다. 즉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구조를 엿볼 수 있다는 의미다.
한편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는 '조선시대의 성담론과 성'이라는 발표문에서 조선후기의 사설시조나 한시 등에서 발견되는 성적욕망의 존재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했던 국문학ㆍ한문학계의 풍토를 비판했다.
강 교수는 "이는 '조선전기가 성리학에 의해 성이 억압된 사회였고, 조선후기는 그 억압으로 탈출하기 시작한 시기'라는 도식에 사로잡힌 내재적 근대론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강 교수는 "가령 성적 표현이 가장 노골적인 <청구영언> 의 '만횡청류' 항목은 1728년에 채록된 것으로 조선후기 이전으로 유래가 거슬러 올라간다"며 "성적인 이야기만 나오면 무조건 성리학의 권위에 도전한, 탈성리학적인 모색으로 파악해서는 조선의 성의 리얼리티를 포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청구영언>
이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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