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측근들이 정부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방송사 사장과 언론단체장에 속속 배치되고 있거나 유력한 후임 인사로 거론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적법한 절차에 따른 선임이라는 입장이지만, 공공기관 성격이 강한 방송사와 언론단체의 지배구조 등을 감안했을 때 사실상 '낙하산 인사'라는 지적이 많다.
전국언론노조와 해당 단체 구성원들이 "정부의 언론 장악 음모가 드러나고 있다"며 크게 반발하는 가운데 정부의 '무리수'가 되려 부작용만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대선 도우미'들 연이어 전진배치
케이블TV 뉴스전문채널 YTN 이사회는 지난달 29일 사장추천위원회가 사장 후보로 최종 추천한 구본홍 고려대 석좌교수를 새 사장으로 추인했다.
구 사장 내정자는 지난해 대통령선거서 이명박 후보의 방송 상임특보를 지냈으며 이변이 없는 한 7월14일 임시주총을 거쳐 공식 선출된다. YTN은 한전KDN과 KT&G, 한국마사회 등 정부투자기관과 공기업을 대주주로 두고 있다.
5일 아리랑TV는 지난해 한나라 대선캠프서 방송특보를 지낸 정국록 전 진주MBC 사장을 사장으로 내정했다. 아리랑TV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무기관인 국제방송교류재단이 운용하고 있다.
앞서 3월26일 KT가 1대 주주인 디지털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는 역시 이 대통령의 대선 방송특보를 지낸 이몽룡 전 KBS 보도국장을 새 사장으로 임명했다.
사장 공모가 진행 중인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의 경우 오래 전부터 양휘부 전 방송위원회 상임위원의 내정설이 파다하다. 이명박 캠프의 방송특보단장을 지낸 양 전 상임위원은 코바코의 임원 추천 절차를 걸쳐 최종후보 2명과 함께 문화체육관광부의 최종 낙점을 기다리고 있다. 코바코의 한 관계자는 "내부에선 양 전 상임위원의 사장 선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래부 현 이사장에 대한 문화부의 노골적인 사퇴종용이 이어지고 있는 한국언론재단의 경우 최규철 전 동아일보 논설주간이 차기 이사장으로 거론되고 있다. 최 전 주간은 이 대통령 대선캠프의 언론특보 출신이다.
1년 넘게 임기가 남은 KBS와 EBS의 차기 사장도 김인규 전 KBS 이사와 이재웅 전 의원 등 이 대통령의 '대선 도우미'들이 때이른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 무리수 두다 되려 역풍 받을라
정부는 이 대통령 측근의 잇따른 방송사 사장 행을 우연의 일치로 치부하지만 언론단체 등은 '설마'가 '현실'로 바뀌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언론노조 YTN지부(YTN노조)은 9일 구 사장 내정자의 선임을 반대하는 청와대 앞 무기한 1인 시위를 시작하는 등 발톱을 세우고 있다. 현덕수 YTN노조 위원장은 "이 대통령의 대선캠프 특보들이 방송사와 언론단체로 일제히 내려오고 있다"며 "다른 단체와의 연대 등을 통해 적극적인 반대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함현호 코바코 노조위원장도 "정부는 공정하다지만 이미 거론된 사람이 (사장으로)내정된 경우가 허다하다"며 "코바코의 입장에 맞지 않는 낙하산 사장이 선임될 경우 퇴진 투쟁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학계에서도 공공성이 강조되는 방송사 사장 선임에 있어 정부가 투명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결국 정권에 독이 된다는 지적이 강하게 일고 있다. 나아가 이 대통령의 측근들이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위해 방송사 사장 공모 신청 등을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최고권력의 측근인사가 엄격한 공정성을 요구하는 주요 방송사 사장이 될 경우 국민들은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며 "국민과 정부와의 효율적 소통도 그만큼 어려워진다"고 꼬집었다.
장 교수는 "방송사 사장의 경우 임명과정이 투명해야 하며 정권의 논공행상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방송이 정권홍보의 친위대처럼 비쳐지면 정권을 넘어 결국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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