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국내 광고물량을 계열 광고사에 몰아주면서 인척관계인 보광그룹과 미묘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그간 제일기획과 보광그룹 계열 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이하 휘닉스컴)에 50대 50 비율로 나눠주던 국내 광고물량을 지난달부터 제일기획 쪽에 100% 일임했다. 앞서 4월에는 삼성증권도 1997년 외환위기 때부터 휘닉스컴이 전담했던 자사 광고를 제일기획으로 옮겨버렸다. 삼성전자와 삼성증권을 합치면 줄잡아 연간 400억원대 물량이다.
휘닉스컴의 지난해 광고 취급고는 2,200억원대. 거의 20%에 육박하는 비중이 한꺼번에 빠진 셈이다. 이 때문에 상시 운영되던 사내 삼성브랜드 전담팀을 해체하는 등 인력 구조조정과 비상경영이 불가피한 상태다.
삼성의 광고 몰아주기는 최근 내수경기 침체와 환율 급등 등 국내ㆍ외 경영여건이 어려워지면서 기업마다 광고물량을 줄이고 인하우스 광고사를 적극 이용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보광이 이건희 회장의 처가인 점을 감안할 때, 삼성가(家)의 ‘외척 거리두기’라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에는 이번 삼성전자 광고물 회수가 이재용 전무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설이 나돌고 있다.
㈜보광과 휘닉스컴 회장이자 최대 주주인 홍석규(52) 회장은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동생이다. 이재용 전무에게는 외삼촌이 된다. 그러나 삼성가는 삼성그룹 계열이던 중앙일보를 보광그룹 홍씨 일가가 장악하는 과정에 대해 상당히 불쾌해 했고, 이번에 광고물량을 모두 회수하면서 ‘더 이상의 지원은 없다’는 뜻을 명확히 한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이재용 전무의 개입설에 대한 삼성의 입장은 한 마디로 ‘어불성설’이다. 한 고위임원은 “보광(휘닉스)의 광고 질이 떨어지고, 특히 해외광고에 있어서 제일기획과는 상당한 실력 격차가 있어 광고회사를 바꾼 것 뿐이며, 지금 그룹 상황에서 이 전무가 광고를 갖고 이래라 저래라 할 처지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섭섭하면 실력을 길러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휘닉스컴의 주장은 다르다. 한 관계자는 “치열한 광고계에서 경쟁력 없이 단지 ‘특수관계’라는 이유만으로 7년, 10년씩 광고주를 유치할 수 있었겠느냐”면서 “공정한 PT(프레젠테이션ㆍ공개적으로 광고능력을 겨누는 것)를 통해 결정됐다면 모르지만, 그룹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해 광고를 가져가는 것은 자율경쟁을 해치는 행위”라고 성토했다.
해외광고의 경우 애초 제일기획이 전담하기 때문에 실력차를 따질 일은 더욱 아니라는 주장이다. 2002년 백색가전 업계에 선풍을 일으킨 삼성전자 ‘하우젠’의 경우 휘닉스컴이 브랜드 네이밍부터 주도해 축적된 노하우가 상당한데다, 외환위기 당시 제일기획에서 여력이 없어 맡을 수 없다고 손 놓은 삼성증권을 맡아 ‘FN아너스클럽’이라는 광고로 업계에 돌풍을 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한 공로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휘닉스컴의 광고 물량을 확보한 제일기획 쪽은 말을 최대한 아끼면서도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한 관계자는 “같은 그룹사 간에는 아무래도 서로의 특성을 잘 아니까 시너지 효과를 더 기대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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