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자금이 갈 곳을 잃고 헤매고 있다.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 은행 정기예금을 드는 건 미련해 보이지만 고유가로 증시가 조정을 받고 부동산 시장마저 침체가 계속되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시입출금이 가능하면서 4~5% 금리를 받을 수 있어 시중자금의 ‘대기소’ 노릇을 하는 머니마켓펀드(MMF)와 CMA 등으로 자금이 모여들고 있다.
10일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5일 현재 MMF 자산 총액이 78조8,290억원으로 8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5일 하루 동안 무려 6,710억원이 늘어났다. 4월 5조9,000억원 증가했던 MMF 자금은 5월에는 10조9,000억원이나 늘어났다.
반면 5월 한달간 은행권의 총예금은 4조9,205억원 늘어나는 데 그쳐 전달의 11조8,012억원에 비해 증가폭이 절반 이상 줄었다. 이중 저축성예금의 증가폭은 5조5,214억원으로 전달의 9조7,277억원보다 42%나 급감했다. 1분기까지만 해도 매월 3%대에 머물렀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분기부터 4%대로 급등하면서 금융 소비자들이 5%대 정기예금 금리에 만족하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5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4.9%로 치솟았는데, 이자의 15%를 세금으로 내야 하는 것까지 고려하면 금리가 최소 연 5.8%는 돼야 실질 가치로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행 집계에 따르면 올해 2, 3, 4월 정기예금 가입금액 중 6.0% 이상의 금리 조건에 가입한 자금의 비율은 각각 10.5%, 3.7%, 14.1%에 불과하고 대부분 5.0~6.0% 사이의 금리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4월에 5.5% 이하 금리로 가입한 39.9%의 예금가입자는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이미 앉아서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은행을 벗어난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3월 서브프라임 충격으로 바닥을 찍은 후 국내 증시는 물론 세계 증시가 동반 랠리를 보였으나 지난달 중반부터는 고유가 충격으로 다시 심한 조정을 받고 있다. 10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91%나 떨어진 1,774.38로 마감하며 하락세를 이어갔다. 이 때문에 고객예탁금은 5일 기준으로 9조9,950억원까지 줄어들었고, 국내 주식형펀드에 유입되는 자금의 속도도 눈에 띄게 느려졌다. 5일까지 MMF 자금이 이달 들어 1조5,000억원이나 늘어나는 동안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겨우 2,2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해외 펀드도 대안이라고 하기 어렵다. 지난해 말 중국 펀드에 가입했다 큰 손해를 본 고객들이 또다시 위험 부담을 감수하지 않으려 하는데다, 올 들어 부각됐던 러시아와 브라질 펀드도 이제 갈아타야 할 시점이 왔기 때문. 신한PB방배센터 송재원팀장은 “연초 고객들에게 러시아나 브라질 쪽 펀드 가입을 권해 괜찮은 수익을 올렸으나 문제는 ‘그 다음’ 지역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라면서 “고유가로 세계 증시가 전반적으로 조정을 받는 상황이어서 공격적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고객들이 중립적 포트폴리오로 전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가가 오르고 금리 혜택을 기대하기 어려우면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올해는 그것도 여의치 않은 모양새다. 강남 집값이 계속 떨어지고 있고 전국에 미분양이 늘어나면서 주택시장이 쉽게 회복될 것 같지 않기 때문. 국민은행 아시아선수촌PB센터 이정걸팀장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체 시장이 불안하기 때문에 상당수 고객들이 주식형 펀드 등에서 환매한 자금을 CMA나 MMF, MMDA 등에 넣어 운용하면서 적당한 때가 올 때까지 관망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 팀장은 “보수적으로 목돈을 운용하면서 물가상승 위험까지 극복하고 싶다면 표면금리에 물가상승률만큼 원금을 더해주는 ‘물가연동국고채’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권했다.
■ CMA, MMF, MMDA : 고객 자금을 기업어음(CP)이나 양도성예금증서(CD), 단기 채권 등 단기금융상품에 투자해 수익을 돌려주는 초단기금융상품. CMA는 종금사 또는 증권사, MMF는 자산운용사, MMDA는 은행이 운용하며 모두 수시입출금이 가능하다.
물가연동국고채 : 국채의 원금과 금리를 물가에 연동시켜 물가변동 위험을 방지하는 국채. 물가상승률에 따라 증가한 금액에 대해서는 이자소득세까지 면제된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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