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국민들에게 사과하겠다”며 세종로 사거리 촛불집회 현장을 찾았다가 시민들로부터 면박만 당한 뒤 발길을 돌렸다.
정 장관은 10일 오후 4시 과천 청사를 출발, 세종로 사거리 인근 호텔에 잠시 머물다 오후 7시 38분께 경찰 호위를 받으며 시민 자유발언이 진행되고 있던 광화문우체국 앞 차량 무대로 걸어갔다. 그러나 정 장관은 곧 시위대에 둘러싸였고, 무대를 20여 미터 앞두고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정 정관은 촛불집회 현장 방문 이유에 대해 “국민들께서 쇠고기 수입 협상이 잘못됐다고 하시니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사죄를 드리러 왔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다는 지적이 많은 줄로 안다”며 “안전한 쇠고기를 공급하기 위해 오늘 다시 협상을 재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더 이상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정 장관은 “시민들의 반발이 클 줄 예상하고 왔다”며 자신을 연단에 세워줄 것을 시민들에게 거듭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그러는 사이 정 장관 주변에는 시민들이 더 많이 모이기 시작했고,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보다 못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측 관계자가 나와 “장관 한 명이 와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연단에 세울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그러나 정 장관은 “자유발언도 할 수 없느냐”고 되물었지만 대책회의 측 관계자는 “그냥 돌아가라”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정 장관이 10여분간 시민들과 마주하고 선 동안 주변에서는 “매국노” “물러가라”는 등의 고함이 터졌고, 일부 시민들은 욕설을 퍼부었다.
시민들에게 떠밀려 뒷걸음질 치던 정 장관은 결국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서대문 방향으로 50여m 이상 떨어진 골목길까지 이동, 전경들이 스크럼을 짠 틈을 타 시민들을 따돌리고 현장을 빠져 나갔다. 이어 정 장관은 쇠고기 수입 협상에 대한 사과와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오후 9시 10분께 보수단체들이 집회를 열고 있던 대학로 마로니에 광장에 모습을 나타냈으나 집회가 대부분 끝나 이곳에서도 발언 기회를 얻지 못하고 과천 청사로 발길을 돌렸다. 정 장관은 기자들에게 “미국에 협상단이 가 있는 만큼 국민들에게 조금만 믿고 더 기다려 달라고 말하기 위해 나왔으나 기회를 얻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 시민은 “진작부터 국민을 생각했다면 그런 협상 결과는 낳지 않았을 것”이라며 “사태가 악화하기 전에 몸을 던지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하던 사람이 내각 총사퇴 후 시민들을 만나려 하다니, 이 또한 국민을 기만하는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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