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ㆍ15 남북정상회담 성사의 주역이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박지원(무소속) 의원이 11일 정상회담 막전막후에 대해 입을 열었다. 특히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정상회담을 먼저 제안했다는 내용이 눈길을 끈다.
2003년 대북송금 특검 과정에서 상당 부분 공개됐던 내용이기는 하나 정상회담 특사로 활약했던 박 의원이 8년 만에 공개석상에서 육성으로 비화를 밝혔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박 의원은 이날 서울대에서 열린 ‘서울대 6ㆍ15연석회의’ 초청 특강에서 우선 정 회장의 제의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특히 “3월 17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열린 1차 예비회담에서 송호경 북한특사가 우리 정부에 현금 지원을 요청했지만 나는 ‘예산 절차상 불가능하다’고 거절했다”며 ‘5억 달러 대북송금은 정상회담 성사 대가’라는 일각의 주장을 부인했다.
박 의원은 또 “처음에는 4ㆍ13총선을 의식해 내가 발표 연기를 주장했지만 오히려 송 특사가 ‘중국 공안이 이미 알고 있고, 10일 평양에서 중요한 행사가 열리니 그 때 발표해야 한다’고 요구해 이를 수용했다”고 주장했다. 16대 총선을 사흘 앞두고 정상회담 사실이 발표돼 야당이 “총선용 회담”이라고 비판했던 일을 해명한 것이다.
그는 정상회담 일정이 하루 연기된 것과 관련, “송금 지연 때문이 아니라 언론이 항공사진을 이용해 평양 순안공항에서 시내까지의 이동 경로를 예측 보도하는 등 보안 문제와 순안공항의 수리 미비가 이유였다”고 해명했다.
김일성 주석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기념궁전 참배를 둘러싼 급박했던 상황도 공개됐다. 박 의원은 “북측이 ‘참배를 거부하면 회담은 없다’고 압박해 ‘나와 한광옥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대통령 대신 참배를 하고 서울에 돌아가 구속 당하겠다’고 버텼고 결국 북측이 ‘안 해도 된다’고 통보해 해결됐다”고 전했다.
박 의원은 참여정부의 대북송금 특검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김 대통령과 차별화하려는 옹졸한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대선후보일 때 김 전 대통령을 방문해 햇볕정책에 대해 다섯 번이나 ‘각하, 저의 생각과 똑같습니다’라고 했지만 취임 이후 (햇볕정책을) 부정하고 묵살해 왔다”며 “6ㆍ15, 10ㆍ4선언을 준수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직접 발언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햇볕정책 설계자인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의 10일 회고록 발간, 박 의원의 이날 특강에 이어 12일 김 전 대통령이 6ㆍ15 8주년 기념행사를 갖는 등 국민의 정부 핵심 인사들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궤도수정을 요구하는 압박이 거세지는 분위기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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