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이민이 아니라 은퇴 이주라니까요.”
얼마 전 여름휴가를 미리 당겨 필리핀 마닐라를 돌아보고 온 자영업자 나모(55)씨. 그는 한 달 정도 실제 필리핀에 체류해보곤 마닐라 도심 근교에 두 채의 콘도미니엄을 구입하기로 결심했다.
필요한 자금은 4억원 정도. 서울의 사업체와 집은 손대지 않고 융통한 돈이기에 충분한 규모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마닐라에서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외국인의 주택 구입이 자유롭고 공인된 중개인을 통한다면 거래가 안전한 편이기에 부담도 적었어요.”
나씨는 두 채의 콘도미니엄 중 한 채는 주거용으로 사용하고 한 채는 자신처럼 은퇴이민을 오는 사람들에게 세를 줘 그 수익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계획이다. “요즘은 아예 한국 국적을 버리고 은퇴이민을 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요. 손자 교육을 위한 어학연수 베이스캠프로 은퇴이민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죠. 아주 붙박이로 이민을 오겠다는 사람은 찾기 힘들어요. 그래서 이민이 아니라 이주죠.”
은퇴이민으로 알려진 ‘노후생활을 위한 이주’의 대상지로는 동남아, 그중에서도 비행시간이 짧고 물가도 국내보다 저렴한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이 주로 선택된다. 필리핀은퇴청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은퇴비자 신청건수는 2005년 1,269명에서 2007년 2,620명으로 크게 늘었다. 말레이시아관광청이 밝힌 한국인 은퇴비자 신청자도 2002년 818명에서 2007년(1~8월) 1,061명으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필리핀은퇴청 국내 마케터인 락소의 홍정렬 부장은 “요즘은 은퇴이민을 가서 뼈를 묻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며 “은퇴이민을 삶을 마감할 장소 선택이 아니라 보다 역동적인 삶을 유지하며 도전의 날개를 펴는 기회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필리핀은 비행거리 4시간 내외로 한국과 하루생활권으로 연결된다는 점과 저렴한 물가, 영어문화권이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총기가 허용되어 있고 종종 불안한 치안 문제가 불거지는 게 단점이기도 하다.
홍 부장은 “부동산거래는 공인된 기관과 하고 현지에서 돈 자랑을 하거나 그 나라의 특징을 폄훼하는 행위를 피해야 한다”며 “은퇴이주를 하면 귀족의 삶을 영위할 것이라는 환상을 버리고 철저히 현지문화를 공부한 후 도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인기 지역인 말레이시아는 최근 들어 이민 등을 위해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 수가 급증하고 있다. 말레이시아관광진흥청에 따르면 올해 1~4월 한국인 방문객 수는 9만5,808명으로 지난해 대비 15.8% 증가했다. 전 세계 관광객 증가세(0.8%)에 비하면 엄청난 비율이다.
이현정 말레이시아관광진흥청 과장은 “말레이시아는 국민 대다수가 회교도이고 총기 사용이 금지되어 있어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치안상태가 좋은 게 장점”이라며 “10년마다 연장할 수 있는 은퇴비자를 받으면 부동산 구입시 대출이 쉽고 면세로 차를 구입할 수 있는 등 혜택이 많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도 필리핀과 마찬가지로 은퇴자들의 손자 어학연수 거점으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말레이어와 함께 중국어, 영어를 공용어로 정했기 때문. 말레이 본토뿐 아니라 보르네오 섬의 소도시 등에서도 한국 학생들을 심심치않게 만날 수 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