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이 대만 문제를 다루는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주임(장관)에 임명됐다는 소식을 접한 김하중 통일부 장관에게는 여러 생각이 떠올랐을 것이다.
우선 왕 주임의 승진을 누구보다 축하했을 것이다. 1980년대 말 3년간 일본에서 자국을 대표하는 참사관으로 친분을 쌓은 두 사람은 베이징에서 주중 한국대사, 차관으로 호흡을 맞추었기에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외교관 출신이 양국 통일업무 수장에 앉았다는 점도 두 사람의 공감대를 더욱 넓혀줄 수 있다.
통일업무 맡은 간판 외교관들
두 사람은 또한 간판급 스타 외교관이기도 하다. 김 장관은 외교안보수석, 주중대사 등 화려한 보직을 거치며 최고의 중국통이라는 명성을 얻었고, 최연소로 외교차관에 오른 왕 주임은 북핵 6자회담 의장, 주일 대사를 거치면서 중국 대중에 가장 인지도가 높은 외교관이 됐다.
하지만 김 장관은 양안 관계와 극명히 대비되는 남북 관계에 생각이 미치면서 착잡한 심정이 됐을 것이다. 가시밭길인 남북관계와 달리 양안 관계는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독립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마잉주(馬英九) 대만 국민당 정부를 맞아 직항 개설, 중국인의 대만 관광 확대 등 대만의 요구를 전폭 수용하면서 양안 관계의 르네상스를 준비 중이다. 11일 양안 협상에서 중국은 ‘쉬운 문제부터 어려운 문제로, 경제로 출발해 정치현안을 다룬다’는 원칙으로 성과를 극대화할 예정이다. 왕 주임은 양안 르네상스의 화려한 주인공이 될 것이다.
특히 중국은 마잉주 정부가 야당인 민진당으로부터 공격 받지 않도록 배려할 정도로 세심한 신경을 쓰고 있다. 중국이 그토록 반대해왔던 대만의 세계보건기구(WHO) 가입도 허용할 태세이며, 대만의 국제무대활동도 어느 정도 보장할 작정이다.
풀리지 않는 남북 관계 때문인지 3월 취임한 김 장관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과거 외교관 시절만 못하다. 과거 10년간의 포용정책과 확연하게 결이 다른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뿌리내리는 힘든 과제를 맡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김 장관이 핵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개성공단 사업을 확대하기 곤란하다는 비외교적 발언으로 북한의 기피대상이 되고, 현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는 정세현 민화협 상임의장의 사퇴를 종용하면서 석 달의 시간을 ‘코드 맞추기’에 보내고 있는 상황은 안타깝다.
양안은 르네상스인데 남북은?
김 장관은 주중대사를 마치고 베이징을 떠나며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평양 백화원 초대소에서 북한 주민을 위해 울며 기도했고 지금도 그렇다”며 장관의 각오를 밝혔다. 그간 만났던 북한 고위 인사들과의 친분도 언급했다. 경험을 밑천으로 새 임무를 창조적으로 수행해 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지난 3개월을 돌아보면 김 장관은 과거 경험을 창조적으로 활용하기보다는 과거 굴레에서 벗어나는 쉬운 길을 택한 듯하다.
그가 앞으로 순항하는 양안관계를 부러워하게만 될 것같아 걱정이다. 마침 북일 대화도 재개돼 6자 회담 참가국 중 한국만이 북한과 대화하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대북 전략과 접근이 절실한 시점이다. 왕 주임 못지않게 유능한 김 장관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베이징 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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