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독일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1810~1856), 영국 시인 조지 바이런(1788~1824),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 이들 천재 예술가의 공통점은? 양극성 장애(조울병)를 앓았다는 점이다.
양극성 장애는 기분이 들떠 신나고 흥분된 ‘조증’(躁症) 상태와 마음이 가라앉는 ‘울증’(鬱症) 상태가 불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야누스적인 질병이다. 기분을 들뜨게 하는 인체 내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기분을 침잠하게 만드는 세로토닌 분비의 불균형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양극성 장애가 단순히 괴팍한 성격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양극성 장애 환자는 감정 기복이 심해 자살할 확률도 단순 우울증 환자보다 2.5배 가량 높다. 공격적이거나 충동적이고 낭비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자와 가족들은 자살로 이어질 수 있는 ‘울증’상태의 위험성을 간과하기 쉽다.
다국적제약사인 한국아스트라제네카가 전국 26개 병원의 양극성 장애 환자 18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60%가 자살 충동을 느꼈고 이들 중 32%는 실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우울증은 여자가 남자보다 2~3배 많으며 30대 이후 중년에서 많이 생기지만, 양극성 장애는 남녀의 발병률이 거의 차이가 없고 젊은 층에서 주로 발생한다.
■ 뇌의 기분 조절 기능에 문제
양극성 장애는 뇌의 기분조절 기능에 문제가 생긴 병이므로 약물을 통해 기분을 조절하는 치료가 필요하다. 뇌에 존재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ㆍ도파민ㆍ에피네프린 등의 농도 변화와 기능 이상이 원인이므로 그 균형을 잡아주는 리튬ㆍ발프로에이트ㆍ라모트리진 성분의 ‘기분조절제’로 치료한다.
현재 양극성 장애의 가장 큰 걸림돌은 병에 대한 인식 부족이다. 대한우울조울병학회 하규섭(분당서울대병원 정신과 교수) 홍보이사는 “양극성 장애에 걸려 심한 감정 기복을 보이는 사람에게 ‘욱 하는 성격 좀 고쳐라’ 혹은 ‘왜 그렇게 변덕이 심하냐’는 식으로 조언하는 것은 오히려 병을 병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환자 탓만 하게 돼 치료를 더디게 만든다”고 말했다.
또 양극성 장애를 단순 우울증으로 오진해 치료를 잘못하면 오히려 병이 악화될 수 있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양극성 장애와 우울증은 생물학적인 메커니즘이 달라 정확한 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양극성 장애를 단순 우울증으로 진단해 항우울제를 사용하면 증세가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우울조울병협회 통계에 따르면 양극성 장애 환자 중 69%가 초기에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지 못했고, 이 가운데 60%는 우울장애로 잘못 치료를 받았다. 또 양극성 장애 환자의 35%는 초기 발병 후 진단까지 10년이 걸렸다.
■ 우울증과 구별해야
양극성 장애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정신분열병(도파민 항진증)이나 우울증처럼 인체 내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세로토닌 분비의 불균형으, 또한 유전ㆍ생물ㆍ심리ㆍ사회적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극성 장애를 불치병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정상생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치료하지 않으면 조증과 울증이 몇개월이나 몇년간 교대로 나타나고, 조증만 주기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치료를 위해 기분조절제라 불리는 항정신병약물 등이 사용된다. 반면 우울증은 프로작 등 항우울제가 쓰인다. 기분조절제는 조증과 울증에 효과가 있지만 항우울제는 우울한 기분을 일으킬 뿐이다.
따라서 양극성 장애가 의심되면 항우울제 사용은 지양하되, 사용시 용량과 사용기간을 최소화하고 치료 반응을 봐가며 동시에 기분조절제를 주 치료제로 써야 한다. 세브란스정신건강병원 정신과 조현상 교수는 “양극성 장애는 항우울제에 대한 기분고양 반응이 있지만 이를 통제하는 브레이크가 없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가벼운 조증이라면 치료가 힘들 수도 있다. 환자의 모든 말과 행동이 이치에 맞고 오히려 활력이 넘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때 가족들은 환자의 주위 분위기를 바꾸고 쉬는 게 도움될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오히려 치료에 역효과를 줄 뿐이다. 환자를 병원에 데려왔을 때는 병이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일 때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다.
양극성 장애 환자는 생활습관도 주의해야 한다. 규칙적인 수면과 식생활을 하는 것이 기분 안정에 도움이 된다. 특히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햇빛을 많이 쬐며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술은 기분을 과민한 상태로 만들기 때문에 피해야 하며, 직업ㆍ학업ㆍ대인관계 등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 극단적이거나 부정적인 사고, 완벽주의적 성향 등을 긍정적이고 객관적이며 보다 여유로운 사고로 바꾸는 인지치료도 도움이 된다. 호르몬과 계절 변화 등에 따라 기분이 심하게 변할 수 있으므로 이를 파악해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권대익 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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