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사진작가 김중만씨의 전시회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남아공과 나미비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의 자선 사진전이었다. 전시작 중 가장 눈길이 많이 간 것은 광활한 사막 사진이었다. 작가에게 물었다. “나미비아 사막이 정말 좋습니까?” 그는 “세상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사막”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고 “특히 ‘듄45’는 정말 매혹적”이라고 했다.
그날 이후 마음은 아프리카의 먼 사막으로 치달았다. 첫사랑의 연인이 부르듯 나미비아 사막의 유혹은 거셌다. 듄45. 무미건조한 그 이름이 그토록 불러댔다.
그리고 마침내 나미비아 나미브사막으로 갈 기회를 얻었다. 꿈에 그리던 곳을 찾아가는 길. 길고 긴 비행과 비포장 황무지를 달리는 먼 여정이 하나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막의 롯지에서 짐을 풀고 다음날 새벽 일찍 길을 나섰다. 부수수한 모습의 일행은 차를 타고 듄45가 있는 소수스플라이(Sossusvlei)로 가는 입구인 세스리엠에 도착했다. 오전6시 길을 막아섰던 문이 열리고 차는 빠른 속도로 소수스플라이로 치달았다. 햇빛이 사선으로 비치는 이른 시각에 듄(사구)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내보이기 때문. 일촌의 시간도 아까웠다.
차창 밖 피라미드 모양의 듄들이 서로를 껴안으며 마치 거대한 산맥이 펼쳐지듯 이어 달렸다. 빠르게 스쳐가는 초록의 덤불 너머로 사막의 산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서 점점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듄45로 가기 전 가이드는 다른 듄 앞에 차를 세웠다. 먼저 출발한 관광객들이 듄45를 오르고 있고, 듄의 능선은 그 발자국에 무뎌졌을 거라는 설명이다. 소수스플라이 붉은 사구 능선의 날카로움을 이 듄에서 대신 느끼라는 배려다. 듄45 대신 그가 보여준 듄은 이름도 없었다.
바람이 밤새 치어올린 듄의 능선은 날카로웠고, 그 선을 경계로 붉게 타오른 사면과 검게 드리운 그림자가 분명하게 나눠졌다. 불룩 튀어나온 듄의 아랫부분에선 비스듬히 태양의 빛을 받아 그림자가 물결쳤고, 그 빛에 따라 명암의 변화가 일어났다. 빛과 그림자의 충돌은 극명했다. 명과 암. 그 사이를 가르는 날카로운 칼날의 곡선에 그만 마음이 베었다. 결고 지울 수 없는 황홀한 흔적이 가슴에 깊게 새겨졌다.
차를 타고 더 달려 소수스플라이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듄45에 도착했다. <론리 플래닛> 등 여러 여행서는 소수스플라이 입구인 세스리엠에서 듄45까지의 거리가 45km라서 45란 숫자가 붙었다고 쓰고 있다. 틀린 이야기다. 사막의 변화를 연구하기 위해 이 근방의 듄 몇개에 번호가 부여됐을 뿐, 듄45와 45km는 그저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론리>
둥글게 감싸올라간 듄의 능선이 곱다. 아카시아나무 몇 그루와 어울려 짙은 붉음을 토해내고 있는 모래언덕. 신발을 벗고 그 날카로운 능선에 발을 올렸다. 발가락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는 모래는 밀가루 만큼이나 고왔다. 단 몇 cm 차이였지만 양지는 따뜻했고 그늘은 차가웠다.
푹푹 들어가는 다리를 끄집어내며 한 걸음 두 걸음 능선 위로 올랐고, 시야가 높아질수록 사막의 광활함이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소수스플라이의 플라이는 납작한 냄비처럼 아래가 푹 꺼져 평평한 지형이다. 사막에서만 발달하는 마른 강 와디(wadi)의 바닥인 셈이다.
사막 한가운데 뻥 뚫린 이 공간에 이끼 같은 연둣빛 덤불이 자라고 있어, 붉은 모래와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끝없이 듄의 바다를 이루고 있는 사막. 비규칙적이긴 하지만 선들은 거미줄마냥 뻗어나갔다.
능선을 더 오르는데 모래 속에서 딱정벌레가 기어나와서는 쏜살같이 달려간다. 불모의 땅 사막이 품고 있는 생명이다. 일교차를 이용해 몸뚱이에 고인 이슬을 받아 먹고 산다는 사막의 딱정벌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참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는데 렌즈 앞으로 뭔가 하얀 게 나풀거렸다.
이물질이 끼었나, 카메라를 내리고 쳐다보니 나비였다. 헛것을 본 것인가. 다시 눈을 부비고 쳐다봤지만 분명 나비였다. 사막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한 쌍의 나비가 펄럭이며 춤을 추고 있었다. 듄45의 칼날 능선에서 우린 나비의 꿈을 꾸고 있었다.
소수스플라이(나미비아)=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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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엔 모래파도 황량한 울림… 밤엔 별바다 황홀한쇼
사막은 아름답다. 감히 말하건대 사막은 에메랄드빛 산호바다보다도, 눈 덮인 알프스의 연봉보다도 아름답다. 정적이 도는 황량한 사막에선 벼랑 끝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이 있고, 그래서 더 큰 울림이 전해져 온다.
나미비아 나미브(Namib) 사막은 전 세계 사막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곳이다. 나미비아의 대서양 연안을 따라 길게 이어진 사막이다. 그 폭이 80~140km에 달하는 모래의 바다로 면적은 남한의 1.35배, 세계에서 24번째로 큰 사막이다.
나미브 사막의 하이라이트는 나우클루프트 국립공원의 소수스플라이다. 밤새 바람이 치올려 듄의 능선을 만들어 놓으면 뜨거운 태양이 빛을 토해내며 그 능선에 날카로움을 더해준다. 나미브 사막의 모래는 붉다. 철 성분이 많은 모래가 오랜 산화작용을 거쳤기 때문이다.
소수스플라이에서 듄45를 올라봤다면 다음 코스는 ‘데드플라이’다. 푹푹 빠지는 모래웅덩이를 4륜구동의 차로 이동, 나무 그늘 아래서 미리 준비한 도시락으로 늦은 아침을 먹었다.
든든히 속을 채우고 다시 태양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열사의 트레킹. ‘사르락 사르락’ 발자국에 흐르는 모래소리만 들려왔다. 마음속 오아시스를 꿈꾸며 20분쯤 걸었을까. 분화구 모양의 사구 안에 눈부신 하얀색의 마른 땅이 나타났다. 600년 전 증발한 호수의 흔적이란다. 그 물이 말라붙고 그 땅에 뿌리를 박은 나무도 말라붙었다. 흰 타일을 깔아놓은 것 같은 바닥은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졌고, 캐멀손 트리는 나무 모양 그대로 탄화되어 새까만 숯이 됐다.
말라붙은 나무 한 그루에 까마귀가 둥지를 틀었다.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새는 ‘깍깍’ 울어대며 이방인으로부터 데드플라이를 지키고 있었다.
시뻘건 모래벽과 하얀 바닥, 그 위에 드리운 그림자. 마치 이승이 아닌 저승의 풍경이랄까. 그곳의 풍경에선 음울한 죽음이 떠올려졌다. 하지만 그 황홀한 매력은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내 죽어 저승 가는 길이 만일 이런 풍경이라면 세상에 대한 미련의 반쯤은 덜고 갈 수 있을 것 같다.
소수스플라이에서 세스리엠으로 나오는 길. 마치 새 길을 가듯 올 때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 펼쳐졌다. 바닥 가득 깔린 덤불의 초록이 그렇게 싱그러울 수 없다. 그 위로 아프리카 타조인 오스트리치와 덩치 큰 영양 오릭스, 맑은 눈망울을 가진 스프링복 등이 떼를 지어 노닐고 있었다.
늦은 오후. 이번엔 6인용 세스나기에 몸을 싣고 사막 위를 날았다. 비포장 활주로를 달려 둥실 떠오른 경비행기. 수저 모양의 듄45 능선이 한눈에 들어왔고, 나우클루프트 산에서 흘러내린 차우찹 강이 사막 한가운데서 멈춰 모래 속으로 스며드는 모습도 보였다.
사막은 바다처럼 넓었다. 파도 치는 바다가 그대로 말라붙은 듯 수백 수천 겹의 모래 파도가 치고 있었다. 오로지 모래뿐인 거대한 사막이 무서워졌다. 행여 그 한가운데 불시착이라도 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롯지의 저녁. 사막이라서인지 바비큐 메뉴가 특별했다. 사파리에서 만날 수 있는 짐승들이 총집합했다. 타조, 쿠두, 오릭스, 얼룩말에 악어고기까지 불판에 대기중이다.
롯지에서의 깊은 밤. 시차 때문인지 짐승의 울음소리 때문인지 눈이 떠졌다. 잠이 쉽게 다시 올 것 같지 않아 발코니 문을 열고 고개를 들었다. 수천 수만의 다이아몬드를 뿌려놓은 듯한 밤하늘. 이보다 많은 별을 본 적이 없었다. 남십자성 옆으로 흐르는 도도한 은하수가 하늘을 완전히 가로질렀다. 유성이 여러 차례 강렬한 선을 긋고 사라졌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놓고는 한없이 별을 호흡했다. 사막은 밤도 찬란했다.
소수스플라이(나미비아)=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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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阿의 보석… 여행가들의 로망
안젤리나 졸리가 2006년 성가신 파파라치를 피해 출산의 장소로 선택한 곳은 나미비아 나미브사막의 외진 롯지였다. 덕분에 전세계 매스컴에 이름을 날렸던 나미비아는 여행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일생에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나라로 꼽혀온 곳이다.
나미비아는 독일의 식민지배(1890~1914)를 겪어 독일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다. 독일의 지배를 벗어나니 남아공이 쳐들어왔고 1990년이 되어서야 독립을 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젊은 독립국이다.
원주민 나마족 말로 ‘대평원’이란 뜻의 나미비아. 가운데는 해발 1,000~2,000m의 거대한 고원이고, 좌측은 나미브사막, 우측은 칼라하리 사막이 에워싸고 있다.
수도는 중앙고원 해발 1,660m에 자리잡은 빈트훅(Windhoek)이다. 시내 중심에는 독일 풍의 건축물과 현대적 감각의 빌딩들이 어우러져 있다. 독일의 요새였던 알테 페스테는 현재 나미비아 국립박물관. 나미비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박물관 옆 네오고딕 양식의 루터교회는 빈트훅의 상징이다. 가장 활기찬 쇼핑거리인 포스트 세인트 몰에는 기비온에서 가져온 운석이 전시돼 있다.
빈트훅에서 소수스플라이까지는 차로 5시간 달려야 한다. 초록이 넘실대는 고원을 지나 허허벌판의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길이다. 소수스플라이 못미쳐 솔리테르란 작은 마을을 지난다. 마을 이름은 ‘고독’이라는 뜻. 바와 주유소가 있는 간이정거장 같은 마을이다. 왠지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콜링 유’가 흘러나올 것만 같은 곳이다.
■ 여행수첩
▲나미비아는 76년간 남아공의 식민지배를 받아 경제구조는 남아공에 많이 의존한다. 화폐는 나미비아 달러. 나미비아 1달러=남아공 1란드. 란드는 나미비아에서도 쓸 수 있다.
▲인천공항과 나미비아 빈트훅을 연결하는 직항편은 없다. 홍콩 등을 경유하는 남아프리카항공(SAㆍ02-775-4697)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남아프리카항공은 스타 얼라이언스 회원사로 아시아나항공의 마일리지가 적립 가능하다. 서울에서 홍콩 3시간40분, 홍콩에서 남아공 요하네스버그까지 13시간 20분, 요하네스버그에서 나미비아 빈트훅까지 2시간 10분 걸린다.
▲입국 비자가 필요하다. 공항 등 국경에서는 비자를 받을 수 없어 남아공 케이프타운이나 프리토리아의 나미비아 대사관에서 받아야 한다.
▲나미비아는 한국보다 7시간 느리다.
▲아프리카 전문 여행사인 인터아프리카(www.interafrica.co.kr)는 나미비아와 남아공 케이프타운을 묶은 10일 일정의 상품을 판매한다. 케이프타운에서 희망봉, 테이블마운틴 등을 둘러보고 나미브사막의 소수스플라이에서 듄45 등 사막 투어에 나서는 일정이다. 4명 이상, 매일 출발 가능하다. 비용은 395만원. www.interafrica.co.kr (02)775-7756
빈트훅=글ㆍ사진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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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에서 띄우는 편지/ 시티 투어의 마지막 일정으로 찾은 타운십
나미브 사막의 감동을 감싸안고 빈트훅에 나왔을 때입니다. 반나절 시간이 남아 일행은 시티 투어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박물관과 교회 등 가이드가 일러주는 코스 중 제일 귀가 솔깃한 곳은 아프리카 빈민촌인 타운십이었습니다.
시티 투어의 마지막 일정으로 찾은 타운십. 산동네 마을엔 노을의 붉은 빛이 조금씩 젖어들고 있었습니다. 구릉 사이에 들어선 네모난 양철집들. 마치 누군가 일부러 닦아놓은 듯 양철지붕과 양철벽은 눈부시게 반짝였습니다.
동네 입구엔 야채를 잔뜩 실은 수레 등 시장이 섰고, 마을 사람들이 몰려나와 흥정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음울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곳엔 활기가 넘쳤습니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녔고, 끼리끼리 모여 대화를 나누는 청년들의 얼굴엔 웃음이 번졌습니다. 의자에 걸터앉아 뜨개질을 하며 잡담하는 아낙들의 모습도 정겨워 보였습니다.
일행이 탄 차가 멈추자 그들이 우릴 주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호기심 많은 청년들 몇몇이 차로 다가왔습니다. 그때 가이드가 재차 경고했습니다. “차에서 내릴 생각하지 말라. 사진을 찍을 때는 절대 창문을 열지 말라. 가방은 창가에서 멀리 두라.”
저도 모르게 몸은 움츠러들었고 먼지 묻은 유리창에 렌즈를 대고 슬쩍슬쩍 도둑촬영만 했습니다. 그들의 삶이 보고 싶어 굳이 찾아와선 그들 옆에 설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차 안에서 꼼짝못했던 제 자신이 무척이나 초라해 보였습니다.
그들에겐 거리낄 것 없는 일상을 마치 무슨 대단한 구경거리인양 찾아와서는 비굴하게 훔쳐보기만 했던 겁니다. 저의 비겁함이 그들의 삶의 진정성에 행여 상처를 주진 않았을까요.
제 부끄러운 시선을 튕겨내는 양철집들의 반사광에 차마 눈을 들 수 없었습니다.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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