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근 글ㆍ유연준 사진 / 생각의 나무 발행ㆍ304쪽ㆍ1만2,500원
최근 미술의 공공성을 중시하는 건축가들이 담장에 팝아트풍의 그래피티를 그려넣곤 하지만 우리의 현대 건축물에서 담은 그저 건축물의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거나, 주거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기능만이 강조돼왔다.
하지만 우리가 이 담에 높은 예술성을 부여한 유구한 전통이 있었음을 혹시라도 아는지? 우리 선조들은 담에 길상(吉祥)적인 의미를 담은 글자나 꽃, 동물 등의 무늬를 새기곤 했는데 지은이는 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담들을 ‘꽃담’ 이라고 이름 붙인다. 그러나 꽃담들은 주로 흙을 소재로 축조한 까닭에 보존에 어려움이 뒤따랐고 중앙정부나 지자체로부터 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형편이다.
책은 점차 우리 기억 속에 사라져 가는 이 담들의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 10여년간 전국을 누빈 한 언론인이 기록한 일종의 전통에 관한 보고서다. 그는 전국 방방곡곡의 궁궐, 읍성, 절집, 고택을 발로 누비며 그 건축물들의 담이 지닌 의미를 미학적으로 분석한다.
가령 저자는 ‘부(富)’자와 ‘귀’(貴)자가 소박하게 새겨져 있는 경기 여주 해평윤씨 동강공파 종택 담장을 찾아가서는 “부귀는 맹목적으로 추구해서는 안될 것이고, 비록 가난하더라도 부끄러움이 없는 생활을 느끼는 즐거움을 훨씬 갚지게 생각할 것”이라며 자계(自戒)한 선조들의 겸손한 메시지를 읽어낸다.
조선시대 국상을 당한 왕비와 후궁들이 상중에 거처했던 낙선재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꽃무늬 담장 앞에서는, 슬픔을 표시하기 위해 단청도 하지 않았던 낙선재 본관 건물들과 묘하게 대조되는 삶의 아이러니를 느끼기도 한다. 또한 사진 속에서만 남은 줄 알았던 ‘쌍 희(囍)’자 선명한 정읍 영모재의 꽃담을 5년 만에 발견하고는 “양식과 재물이 넉넉한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 선조들의 간절한 마음을 읽어내기도 한다.
“꽃담은 담백하고 청아하며, 깔끔하고, 순박한 한국의 멋, 아름다움 그 자체”라는 저자의 칭송을 읽으면서 혹여 ‘허물어져가고 퇴락해가는 옛 건축물의 담장을 보고 왜 이렇게 과장된 감상을 쏟아내는 것인가?”하고 의문을 가질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읽고나면, 누구도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는, 그러나 누군가는 꼭 기억해야할 ‘꽃담’이라는 문화재에 대한 저자의 뜨거운 애정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것 같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