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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기자의 Who's Now] 배우들이 인정하는 나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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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기자의 Who's Now] 배우들이 인정하는 나문희

입력
2008.06.09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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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연기를 잘하는 노배우의 이름을 대보라고 했을 때 그의 이름을 빼놓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한다 하는 영화 감독들이 가장 많은 러브콜을 보내는 배우 나문희(67). 54세에 무명의 긴 터널을 벗어난 그는 <너는 내 운명> <열혈남아> <화려한 휴가> 의 슬프고 아린 어머니부터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과 <거침없이 하이킥> 의 귀엽고 웃기는 어머니까지, 코미디와 비극을 종횡무진하며 명연기들을 토해내고 있다.

황정민, 설경구, 김선아, 심지어 최불암까지 '이 시대 가장 뛰어난 명배우'로 꼽는 그를 햇살 좋은 초여름날 만났다. 새 영화 <걸스카우트> 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그는 설레 보였다.

- 영화 <걸스카우트> 에서 생애 최초의 와이어 액션을 하신 걸로 화제가 되셨어요.

"하하. 그랬어요. 겁이 나니까 해야 하느냐고 엄살부터 했는데, 아무리 나이가 먹었어도 내가 해야 할 부분이니까 또 도전을 해봐야지. 그래서 그냥 했는데, 하고 나니까 성취감이 있었어요."

- 한번에 쉽게 잘 되던가요? 키도 크고 하셔서 운동신경이 발달하셨을 것 같은데요.

"운동신경은 둔한데, 리허설을 많이 하니까 조금 잘 된 편이에요. 키는 165㎝니까 제 나이에 비하면 큰 편이죠. 하지만 키 크다고 운동 잘 하나, 덩치만 크지. 이번에는 덩치 큰 (김)선아가 옆에서 딱 버텨줘서, 편했어요."(웃음)

- 영화 ,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에 이어 김선아씨랑 세 번째 만나셨어요. 작업하기 어떠셨어요?

"선아가 너무너무 좋은 처녀예요. 우리 선아가 참 배려를 많이 해줘서 편하게 작업을 했어요. 틈틈이 어쩜 그렇게 선배를 챙기는지, 나한테 잘해주니까 우선 그것보다 고마운 게 없죠. 내가 워낙에 선아씨 팬이에요. 능청맞게 시침 뚝 떼고 하는 연기가 다른 사람이 가질 수 없는 커다란 힘이고, 굉장히 꼼꼼해요. 같이 하는 연기자들까지도 지가 틈틈이 설명을 해주는데, 그거 잘 들어서 하면 도움이 돼요. 난 선배인데도 그렇게 못 한 것 같애."

- <걸스카우트> 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셔서 출연하게 되셨어요?

"처음에는 선아가 한다니까 나도 한다고 했지. 영화사 대표가 전에 <조용한 가족> 을 같이 했었는데, 그때 참 좋았어요. 그렇지 뭐, 나 배운데."(웃음)

나문희는 성우로 연기 인생을 시작했다. 1961년이니 스무 살 때다. 한국 최초의 여성화가이자 소설가로 이름난 신여성 나혜석(1896-1849)이 그의 고모할머니. 그는 아무래도 가문의 끼를 물려받은 것 같다고 했다.

- 성우가 꿈이셨어요?

"연극하는 게 꿈이었어요. 그래서 소꿉장난은 안 하고 맨날 노래하고 춤추고 그러고 놀았어요, 동네에서 친구들하고. 끼가 있었던 것 같애."

- 그 당시 성우란 직업은 널리 알려진 직업이 아니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KBS에만 있었으니까. 젊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정은숙씨나 고은정씨 같은 성우들이 너무 좋았고, 또 뭔가 할 일을 찾아야 하는 때였고, 그래서 MBC 시험을 봐서 성우 1기생으로 들어갔어요. 외화 더빙을 제가 굉장히 많이 했어요. 내 소리가 지금은 많이들 들으셔서 익숙하겠지만, 그때는 참 개성이 없었던 것 같애요.

말하자면 어디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아니었어요. 정은숙씨는 목소리가 아주 맑고 고은정씨는 떨림의 소리라든지 이런 흐름이 좋은데, 내 소리는 조금 고지식하다고 할까? 거기다가 자연스러운 걸 내가 무의식중에 지향한 것 같애. 그래서 더빙할 때 어느 배우하고나 잘 맞았어요. 그때 목소리를 다양하게 많이 냈고, 또 제작비가 많이 들까봐 만일 출연하는 사람이 100명이면 목소리 성우는 일곱, 여덟 명으로 하니까 한 사람 몫이 여러 역이였죠.

(굵은 목소리로) '네가 그랬단 말이냐?' 이랬다가 (가는 목소리로) '아, 네, 제가 그랬어요' 이런 식으로. 하하. 완전히 변사처럼. 그때 그런 걸 훈련해서 그런지 나중에 표재순 연출자님이 나한테 '목소리의 마술사'라는 극찬을 해주신 적도 있는데, 그런 건 나도 '그래, 그건 나의 장점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 인상적으로 하셨던 배역이나 기억에 남는 역할 있으세요?

"나혜석 할머니가 우리 아버지의 고모님이시니까 나한테는 왕고모신데 그때 한운사 선생님이 <에미는 선각자였느니라> 라는 드라마를 쓰셨어요. 그때 나혜석 역할을 하면서 많이 울었어요. 스토리도 너무 좋았고."

- 어떤 집안 분위기에서 자라셨어요?

"우리 집안은 굉장히 개명했고, 부자였어요. 수원에 나부잣집이라고 하면 다 알았는데, 그 중에 우리 아버지는 조금 처진 자식이었어요. 아버지가 농땡이를 좀 쳐서 우리 식구들이 고생 많이 했죠. 우선 가난했으니까. 제가 자란 곳은 수원이지만, 출생지는 중국 북경이에요. 북경에서 다섯 살 때 나왔어요, 해방되던 해에.

제가 약간 중국 티가 나지 않아요?(웃음) 우리 작은 댁 할아버지가 북경에서 고무공장을 하셔서 아버지가 그리로 넘어가셨는데, 북경에서 만주 봉천으로 가던 길에 큰 밥솥을 동네 입구에 만들어놓고 공동으로 같이 썼던 게 기억나는 걸 보면 아마 공산주의였나봐요."

- 성우로 출발해서 배우로 전직하신 셈인데, 탤런트로 가신 이후에 힘들지 않으셨어요? 대우도 예전 같지 않았을 것 같고.

"좀 힘들었어요. 탤런트들이 워낙 자리를 잡고 있으니까, 우리 성우들은 말하자면 찬밥이었죠. 그래서 처음에는 남들이 안 하는 누구 엄마, 다방 마담, 술집 주인 같은 역을 휘뚜루마뚜루 다 했죠."

- 하기 싫지 않으셨어요? 성우할 땐 그래도 주인공이었는데….

"그럴 경황이 없었던 게 워낙 일을 좋아해요. 지금도 누가 일하자고 하면 아프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하니까. 그게 아직까지도 나의 축복이에요."

- 젊으셨을 때부터 나이든 역할을 많이 하신 편이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좀 억울하지 않으세요? 내 청춘을 돌려줘, 이런 기분도 들 것 같은데요.

"많이 했지. 하지만 그렇게 억울할 것까지는 없어요. 워낙 마음 편하게 긍정적으로 가는 성격이니까. 젊은 역할들을 많이 했더라면 대신 생활이 불편했겠지. 아빠(남편)하고 관계, 이런 게 좀 불편했을 텐데, 그러니까 딸들도 아버지도 다 내가 연기하는 것을 편하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다 일장일단이 있죠."

나문희라는 이름을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알게 된 건 1995년 방송된 KBS 일일드라마 <바람은 불어도> 덕분이다. 이북 사투리를 쓰는 억척스런 할머니로 분했던 그는 이 드라마로 KBS 연기대상을 받으면서 흔히 말하는 '존재감'이라는 걸 얻게 됐다. 54세에 전성기가 열린 셈이니, 대기만성도 이런 대기만성이 없을 것이다.

- 오랜 무명기간을 거친 후 확 유명해지셨는데, 어떤 느낌이셨어요?

"느낌도 몰랐어요, 그땐.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거지, 그 나이에."

- 이북 사투리 연기가 아주 화제였잖아요.

"그때 동네에 이북 아주머니가 한 분 사셨어요. 이사 온 지금도 그 아주머니랑은 관계를 쭉 유지하고 있는데, 그때 내가 '아줌마, 내가 로열티 준다'(웃음) 그러면서 선물도 하고, 그렇게 사투리를 배웠어요. 그 느낌을 배우려고, 그 아주머니가 어디서 떠들면 난 거기 앉아서 멍하니 듣고 있었으니까.

그냥 말려들어가서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관찰했어요. 그때만 해도 그런 열의가 있었어요. 전라도 사투리를 하면 또 시장에서 모델을 찾았고. 난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한테서 모델을 찾았어요. 아무튼 열심히는 했어요, 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 선생님 두고 '국민 어머니'라고 많이들 그러잖아요.

"국민 어머니는 여러분이잖아.(웃음) 각자 자기에 맞춘 국민 어머니들이지. 나는 나문희식 국민 어머니고."

- 그 별칭이 마음에 드세요?

"글쎄, 좀 무안해. 거기다가 국민을 붙여준다는 게."

- 국민 어머니를 어머니로 둔 자제분들은 어떨까 궁금해요. 따님 세분 두셨죠?

"네. 다 출가시키고, 손주도 네 명 있어요. 우리나라 엄마들은 다 국민어머니야. 나름대로 다 애썼는데 뭐. 나는 글쎄 항상 열심히 하는 사람이지 잘 하는 어머니는 아니에요. 다 할 줄 몰라, 김치도 담글 줄 모르는데, 뭐. 엉터리야."

- 국민 어머니가 김치를 담글 줄 모르신다구요?

하하하하하. 그렇다니까. 나는 연기하는 국민 어머니야. 그냥 뭐 어디서 먹어보면 금방은 그 맛을 흉내를 내는데 한 두끼만 지나가면 다 잊어버려요. 김치는 어머니가 해주시든지, 아니면 사먹거나 누가 주면 먹고 그랬어요."

- 가족들은 좀 불만이 있지 않았을까요? 밖에 나가서만 국민 어머니인데….

"그렇지는 않아요. 내가 그래도 착하죠.(웃음) 되도록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하니까."

- 참 다양한 어머니 역할을 하셨는데, 실제의 선생님과 가장 비슷한 유형의 어머니는 어떤 어머니였을까요?

"노희경 작가가 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 나하고 많이 비슷했어요. 그때 나는 연기를 하지 않았어요. 김영옥씨가 내 시어머니로 나왔는데, 죽음을 앞둔 내가 치매에 걸린 그 양반을 홀로 두고 갈 수 없어서 목을 누르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것만 연기로 했고, 나머지는 그냥 있는 그대로 해서 너무 편안했어요. 그런데 반응이 좋아서 정말 행복했죠."

- 작품을 많이 하시다 보면 대본에 동의를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인물의 행동을 수긍할 수 없을 땐 연기가 잘 안 될 것 같은데, 어떠세요?

"안 돼요. 그럴 땐 죽음이지, 뭐. 그럴 때는 식구들을 좀 못 살게 구나봐, 나도 모르게. 그게 잘 되면 세상이 너무 편하고…. 이번에도 <걸스카우트> VIP 시사회를 보고서야 조금 안심이 돼서 그날부터 컨디션이 좀 나아졌어요. 그 전에는 나를 하도 들볶아서 밥 먹고 이런 것도 잘 되지가 않았어요. 그냥 '잘 돼야 되는데'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떨어지지가 않으니까."

- 배우들은 유독 감성이 발달한 사람들이고, 선생님 같은 경우는 우는 연기, 슬픈 연기도 참 많이 하셨잖아요. 코믹 연기와 눈물 연기가 모두 최고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는 보는 사람들을 울리실 때 그 연기의 잔상이 두고두고 남는 것 같아요.

"왜, <거침없이 하이킥> 할 때 재밌었잖아.(웃음) 하지만 나 역시 우는 장면이 기억에 오래 남아요. 그런 장면 끝나면 한참을 내가 '허어, 허어' 이렇게 몸을 떨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을 할 때는 그날 종일 울었던 것 같애. 그만큼 깊이 들어가요. 가짜로 운 건 금방 잊어버려요. 가짜로는 잘 못 울어."

- 지금껏 하신 연기 중에 내가 봐도 좋았던 연기를 꼭 꼽으라고 한다면 뭘 꼽으시겠어요?

"<바람은 불어도> 할 때 강가에 가서 이북을 바라보면서 영감 이름을 막 부르며 우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 장면이 좋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도 그랬고, <너는 내 운명> 에서 에이즈 걸린 여자랑 살겠다는 아들을 위해 큰 아들네로 가면서 헤어지는 장면도 그랬어요."

- 실제로 뵈니까 상당히 도회적이신데, 시골 할머니로 나오실 때가 훨씬 많으세요. 꼬부랑 할머니처럼 등까지 굽으신 모습으로 정말 100% 진짜 같은 연기를 하시는데, 혹시 연습도 하시나요?

"당연하지. 나는 연습 정말 많이 하고, 연습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대본 봤을 때의 첫 느낌은 훈련하는 과정에서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애써요. 머리로 생각을 많이 하는 거예요. 밥 하면서, 길 가면서 생각을 많이 해서 머리로 삭혀요.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후배들이 아주 귀찮아해. 계속 붙잡고 연습하니까.

언젠간 날더러 그래요. '왜 그렇게 잘하나 했더니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거였구만.' 예를 들면 사투리 같은 거, 잘 안 되잖아요. 입에 붙게 하려면 얼마나 많이 해봐야 되겠어요. 그럼 자꾸 상대역을 귀찮게 하는 거지. 그래서 내가 평가를 아주 후지게 받은 적이 있어요.(웃음) '그렇게 노력해서 겨우 그거였구나' 이렇게. 연기 잘하는 법? 절대 연습이에요."

- 함께 연기할 때 어떤 선배세요? 무서운 선배세요, 관대한 선배세요?

"그게 기복이 심했어요. 50대엔 내가 좀 잘난 체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땐 후배들한테 못되게 굴었나봐. 주위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나중에 하더라구요. 지금은 되도록이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을 끄집어내서 보여줄 수 있게 도와주죠. 실은 내 거나 잘했으면 좋겠어.(웃음)

옛날에는 '그렇게 하면 너하고 안 한다'고, 그런 횡포도 부렸었나봐요. 누구였는지 기억도 안 나요. 그럼 안 되는 건데…. 연기는 호흡이 중요해서 짧은 시간에 그게 안 나오면 속이 타요. 다행히 요샌 배우들이 정말 연기를 잘해요. 옛날엔 얼굴 예쁘면서 연기 못하는 배우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걸 상당히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 젊은 배우들과 호흡을 많이 맞추셨는데, 아들, 딸로 나온 배우들 중에 '야, 요 놈은 진짜 내 아들, 내 딸이면 좋겠다' 그런 생각 들 때 없으셨어요?

"황정민씨. 느글느글하니, 우선 편하잖아요. 정말 아들로 나왔을 때 만만한 구석이 있어야 되는데, 정민씨가 그래. 자기 관리 철저히 하고 그래서 훌륭한데 또 아들로 나올 땐 진짜 아들처럼 느글느글하게 구니까. 그런 배우가 좋아요, 나는. 배역에 따라서 자기를 확 바꿀 수 있는 사람. 선아라든지 전도연이라든지 이런 배우들은 같이 해보면 참 잘하고, 어디서 또 잘 한 거 보면 전화라도 해주고 싶고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하곤 관계가 항상 유지가 되고 하죠."

나문희에게는 큰 배우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자의식 과잉이 보이지 않았다. 거창한 연기론을 피력하지도 않았고, 대부분의 질문에 성실하되 담담하게 답했다. 경기 양주의 세트장에서 여느 어머니처럼 화장실 청소를 하는 모습으로 김선아를 놀래켰다고 하는 그는 배우로 47년을 산 사람답지 않게 일상과 경계 없이 밀착돼 있는 듯 보였다. 미국에 사는 둘째딸 이사하는 데 가서 식모살이를 하고 왔더니 기운 없어 죽겠다고 농담하는 그다.

- 화장실 청소는 누굴 시키시지 왜 하셨어요?

"늘 하는 건데, 뭘. 난 치우고 비우는 게 취미야. 지저분하니까 해야지."

- 스물 여섯에 결혼하셔서 지금껏 해로하셨는데, 그것도 배우로서는 좀 특이한 이력이에요.

"우리처럼 일이 있는 사람들은 사실 살기가 더 편해. 내 일이 있으니까 다른 걸 다 참을 수가 있어요."

- 결혼할 때 얘기 좀 해주세요.

"결혼? 그냥 선 봤는데 옛날 덕수궁 근처에 있던 덕수장이라는 데서 떡국 한 그릇 사주더니 덕수궁엘 들어가서 왝왝 소리 지르면서 '미라보 다리' 같은 시를 읊더라구요. 귀신 나올 것처럼 그러더니 그 다음에 만나선 나더러 고전음악을 좋아하라고 그러고."

- 첫 눈에 반하셨나봐요?

"아뇨. 첫 눈에 너무 안 반했어. 나중에 등산 갈 때 보니까 조금 근사했어요. 우리 바깥 선생은 나하고 여덟 살이나 차이가 나니까 나한텐 그야말로 선생님이에요. 실제 영어교사였고, 내가 여건이 안 돼서 학교에서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그 사람한테 많이 배웠죠. 예전에 아르바이트로 음악실에서 DJ를 했는데, 그게 계기가 돼서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렸고, 그 다음에는 영감이 항상 그런 분위기 만들어줬어요.

인문적 소양을 기르는 데 많이 도움이 됐죠. 지금도 그래요. 다른 건 빡빡하고 영 싫은데 내가 뭐 물어보면 그건 최선을 다해서 대답을 해주기 때문에 큰 스승님이야. 그래서 스승의 날에 난 우리 영감한테 은근히 잘해."(웃음)

- 바깥 선생님 건강은 좀 어떠세요? 대장암 투병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지금은 괜찮아요."

- 투병하실 때가 하필이면 <거침없이 하이킥> 이라는 시트콤을 하실 때였어요.

"그래. 그러니까 얼마나 일 속으로 쏙 들어가버렸는지 몰라. 그게 훈련이 된 거죠. 옛날에 정릉에 살 땐데, 애기 젖 먹일 때였어요. 아리랑 고개에 오면 그때서야 애기 생각이 나는 거야, 종일 잊어버렸다가. 요번에도 영감 아프면서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 <거침없이 하이킥> 같은 코미디를 하는데, 몰입하는 것 때문에 그냥 했나봐요. 그래도 많이 힘들었겠지. 옆 사람이 참 많이 힘들어요."

- 가끔 죽는 역할도 하시잖아요. 최근 MBC 드라마 <천하일색 박정금> 에서도 죽는 연기를 하셨는데.

"그게 늙어서는 좀 기분 나쁘더라. 젊어서는 근사한 것 같더니, 50대만 해도 멋있는 것 같았는데, 60대가 되니까 상당히 싫던데요."

- 도대체 연기라는 게 뭘까요?

"글쎄, 대신 풀어주는 거랄까, 무당이 굿으로 풀어주듯이 우리도 감정놀이로 사람들 감정을 풀어주는 거 아닐까. 그걸로 즐겁게 해주잖아요."

- 47년간 연기를 해오셨어요. 반 세기 가까운 세월을 한 일을 해오신 건데, 배우로 살아온 삶이 어떠셨어요? 행복하셨어요?

"그동안에는 너무 바빠서 몰랐는데, 그냥 소시민으로 살아도 좋을 것 같아요. 자유스럽게. 너무 자유스럽지가 않아서 식구들한테 많이 미안하고, 인제 정말 자유스럽고 싶어요. 그래서 이젠 연기자인 나이지만, 그동안에도 자유스럽게 살고 싶어서 지하철 타고 싶으면 타고 그래서 기사거리도 되고 그랬는데, 이젠 조금 더 그러고 싶어요. 내 마음이 편한 자유. 자유스럽지 못한 게 몸에 배서 귀찮아."

- 잘못 들으면 무슨 은퇴 고려, 이렇게도 들려요.

"하하하. 은퇴는 안 할 거야. 죽어도 여기서, 현장에서 죽을 거예요. 남한테 민폐 끼치지 않고 건강하게 펄펄 뛰다가 어느날 가면 너무 좋을 것 같애."

- 100세 수명시대가 곧 열리는데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우리는 그렇게 못해. 감정이 너무 격하고 그래서. 배우들이란 게 날마다 이렇게 올라갔다 저만큼 푹 꺼지고 하는 사람들이라 조금씩이나마 우울증 없는 사람이 없고, 튼튼하지 못한 구석이 너무 많아요. 다만 할 때까지만, 뭐 시작했다가 끝 못 맺고 없어지면 큰일나니까, 그런 일 없이, 그런 것만 하늘에서 크게 도와줬으면 좋겠어요.(웃음) 그런데 우리 선아를 인터뷰하지, 왜 나를 해? 우리 선아가 좋은 인터뷰 기사가 많이 나가야 하는데…."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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