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100일은 우울했다. 지지율이 20%로 내려가고, 반정부 시위대와 경찰이 유혈 충돌하고, 신문 방송들은 대통령의 지도력에 문제가 있다고 일제히 때리고 있다. 4일 실시된 재ㆍ보궐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52곳 중 겨우 9곳에서 이겨 노무현 정부 아래 유지해 온 재ㆍ보궐선거에서의 불패 신화가 깨졌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지난 100일을 함께 겪어온 국민들도 충격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 충격은 근심으로 바뀌고 있다. 이 대통령은 과연 이 난국을 돌파할 수 있을 까. ‘인기 없는 대통령’과 5년을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불길한 예감에 머리를 흔들고 있다.
노무현과 다르게만 해 오다가
이 대통령을 당선시킨 제1의 공로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진보세력의 실정에 절망한 유권자들은 선거과정에서 드러난 이명박 후보의 숱한 허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투표했다. “일은 잘 하겠지”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부자 내각, 부자 비서실을 구성할 때도 “재산이 문제가 아니라 능력이 문제”라는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기대는 곧장 깨졌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시작되었을 때 “자동차를 수출하면서 쇠고기 수입을 막겠다는 거냐” 고 못마땅해 하던 사람들은 졸속 협상의 진상이 속속 밝혀지자 크게 실망했다. 재산이 많더라도 유능하면 된다던 각료들과 청와대 비서진의 무능이 드러났다. 나랏돈으로 자신의 모교와 자녀의 학교에 가서 인심 쓰는 교육부 고위 관리들의 몰염치까지 터져 나왔다.
한 택시 기사는 “이렇게 할 바엔 재산공개 제도를 왜 유지하느냐. 서민들 약 올리려고 재산 자랑하는 거냐. ‘장기 투기’로 부자 된 사람들이 출세까지 하겠다니 말이 되느냐”고 분개했다. 대통령의 생각이 택시 기사보다 짧았던 것은 그의 상황인식이 안이하고, 통치철학이 빈곤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았을 뿐 다른 준비가 부족했다. 그는 전경련을 방문하여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강조했고, 더 이상 북한에 퍼주기는 없다고 선언했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반발하는 근로자들과 중소기업 등에 그는 다시 ‘프렌들리’를 외쳤고, 북미 접촉이 깊어지자 식량 지원을 못해 안달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과 반대로 가면 보수층을 잡을 수 있으리라는 그의 계산은 틀렸다. 그는 대선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했지만 낮은 투표율을 감안하면 그가 얻은 지지율은 전 유권자의 30% 정도에 불과하다. 30%의 지지로 10년 간 발전시켜 온 남북관계의 기조를 가볍게 뒤집을 수는 없다. 북한 비위 맞추기 등 국민의 자존심이 상했던 부분만 개선하면 된다. 보수도 그 동안 많이 진보화했다. 시청 앞에서 궐기대회를 하던 보수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를 찍었던 삼사십대가 촛불시위에 동참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한 한나라당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치(政治痴)”라고 말했다. 정치감각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그는 지금 건설회사 CEO가 아니라 대통령이다. 당연히 정치를 잘 해야 한다. 자신이 정치력이 없으면 정치력을 가진 유능한 보좌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정치꾼’을 싫어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교수 출신들에 둘러싸여 무슨 정치를 하겠다는 건가.
노련하고 생각 바른 참모 찾아야
이러다간 5년 내내 낮은 지지율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대운하 이외에 다른 준비는 없는 게 아닌가”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오만한 건지 무신경한 건지, 고집인지 무지인지 헷갈리게 하는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인적 쇄신이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을 써서 어떤 일을 하려는지가 중요하다. 노련하면서도 생각이 바른 참모를 찾아서 정치치의 약점을 보완해야 한다. 반면교사만으로는 이미 바닥이 드러났다.
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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