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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名品 먹거리] 도쿄서 삼겹살… 파리서 빈대떡…!!! 맛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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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名品 먹거리] 도쿄서 삼겹살… 파리서 빈대떡…!!! 맛코리아

입력
2008.06.09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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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과 와인 '앙상블'

식사 중 국을 먹지 않는 외국인들은 와인이나 기타 리큐르를 한 잔씩 두고 반주를 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인지 다른 나라의 한국식 레스토랑을 가면, 유난히 우리 음식과 함께 와인을 마시는 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김치찌개의 매운 맛에는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달콤한 와인 게뷔르츠트라미너(Gewurztraminer)를, 씹는 맛이 있는 닭백숙에는 적포도인 피노누아(Pinot noir)의 함량이 많아 무게감이 있는 샴페인 뵈브 클리꿔(Veuve clicquot)를, 표고버섯을 넉넉히 넣고 양념한 잡채에는 맛이 고급스러운 우리 술 한산 소곡주를 매치해보자.

“도쿄 시부야를 내려다보며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파리 노트르담을 올려다보며 빈대떡과 비빔밥을?”

꿈이 아닌 현실이다. 2008년 현재 세계 대도시 곳곳에는 한국 식당이 번듯하게 자리를 잡고, 현지인들을 상대로 꿋꿋이 버텨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 음식의 인기 비결은 무얼까?

시부야의 ‘처가방’

인구 많고 넓기도 한 도쿄에서도 가장 유동인구가 많다고 알려진 시부야의 지하철역을 나오면 한번에 1,000명 이상이 건너는 횡단보도가 있다. 4거리, 5거리, 6거리를 거미줄처럼 잇는 횡단보도의 불이 한꺼번에 켜지면 어마한 인파가 걷기 시작하는 것이 장관이다.

시부야역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면? 장소는 둘 중 하나다. ‘하치코’ 동상 앞 아니면 쇼핑몰 ‘109’. 주인에게 충심을 다하고 죽었다고 전해지는 강아지 하치코는 동상으로 만들어져 시부야역을 지키고, 쇼핑몰 109는 트렌디하고 알록달록한 옷과 소품으로 여심을 지킨다. 일개 쇼핑몰이라 하기에는 꽤 큰 규모의 빌딩이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교차로에 떡 버티고 서 있으니, 약속장소를 109 앞이라 정하면 서로 어긋날 일이 없다.

자, 그 쇼핑몰 위에 있는 한국음식점에 한번 가볼까. 사장님께서 장모님 사랑을 듬뿍 받으시는지 상호가 ‘처가방’이다. 들어서면 개량 한복을 입은 한국 분들이 서빙을 돕는다. 메뉴에는 삼겹살부터 김치찌개, 냉면, 제육볶음 등이 다 있다. 우리 술도 종류별로 있다.

도쿄 한복판, 그것도 시부야의 정 중앙에 있는 한식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일본 현지인들이다. 회식하러 오는 직장인들, 쇼핑 후 들른 아가씨들, 혼자 들러 찌개백반으로 허기를 채우는 일본 아저씨 등을 만날 수 있다.

창가에 앉아 입맛에 맞는 밑반찬을 안주 삼아 차가운 소주를 한 잔 마시면, 저 아래 횡단보도를 건너는 수많은 인파가 비디오 아트를 보는 듯 아득하다. 동경의 시부야 꼭대기에는 삼겹살과 소주가 있다.

노트르담의 ‘길손’

프랑스 파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 수입을 올리는 도시다. 누구나 낭만을 꿈꾸며 파리를 찾아 먼 길 마다않고 날아온다. 특히 파리의 정 중앙에 위치한 노트르담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인산인해를 이룬다. 빅토르 위고의 원작을 읽어서,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인기 뮤지컬을 봐서, 아니면 종교적인 이유로 많은 이들이 노트르담을 직접 보고 싶어 한다.

노트르담을 따라 세느강을 걷다보면 정다운 상호의 레스토랑이 눈길을 잡는다. 한글로 ‘길손’이라 쓰여 있는. 이국적인 풍광도 낭만 가득한 공기도 채워줄 수 없는 이방인의 쓸쓸함이, 모국어로 된 두 글자에 이내 따뜻해진다.

들어서면 젊고 친절한, 한국어와 불어를 모두 잘 하는 웨이트리스가 “몇 분이세요?” 하며 반긴다. 창가 자리에서는 노트르담이 보인다. 초여름에 접어들어 잎으로 풍만해진 나뭇가지 사이로,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색색 모자 사이로, 바람 사이로 보인다.

엽서 같은 창 밖 풍광에 빠져있노라면 손빠른 주방 아주머니들에 의해 뚝딱 준비된 한국요리들이 속속 상에 오른다. 표고로 담백하게 맛을 낸 된장찌개, 돼지고기를 맵게 두루친 김치두부, 도톰한 빈대떡 등이 하루 종일 걷다가 지친 길손을 행복하게 해준다. 한국 음식을 몇번인가 먹어본 옆 테이블의 금발 아가씨는 디저트로 떡을 주문, 호기심에 따라 온 금발의 남자친구에게 한 조각 잘라 권한다. 또 다른 테이블의 프랑스 아주머니들은 불고기에 하우스 와인을 마신다.

세계의 입맛 사로잡는 한식의 비밀 두 가지

프랑스의 유명 여성지 ‘엘르’(Elle)의 지난주 불어판을 보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금주의 레스토랑‘에 파리에 위치한 한식당 ’소반'이 소개되었고, 몇 페이지 넘겨 파리 외곽의 맛있는 레스토랑을 소개하는 칼럼에 다시 ‘궁전’이라는 이름의 베르사유 근처 한식당이 기사화된 것이었다. 게다가 ‘2008미슐랭 가이드’에는 ‘사미인’이라는 한식 레스토랑이 최초로 이름을 올렸다. 우리 음식 고유의 맛만으로 세계 대도시인들의 입맛을 붙잡기 시작했나보다.

21세기 들어 세계인들에게 재발견되고 있는 한식의 특징은 두 가지. 입맛은 크게 퓨전화시키지 않고 최대한 고유하? 서빙이나 프레젠테이션은 현대적으로다. 그리하여 한국 음식을 먹으면 얼마나 속이 편안한지(물론 과식을 안 한다는 전제 하에) 알게 된 음식평론가들이나 트렌드 리더들이 한식 레스토랑을 다시 찾는 것이다. 그들이 목에 두른 실크 스카프에 냄새가 배는 것도 아랑곳않고 갈비를 굽는다. 레몬 소주를 마신다. 막걸리를 마신다. 보기만 해도 신나는 일이다. 앞으로 더 자주 보고 싶은 일이다.

박재은ㆍ음식에세이 <밥 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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